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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6, 10월 17일 (토) — 안성재가 길에서 본 요리 학교에 바로 들어가고, 첫날부터 일터 맨 아래 일을 하다 '내 모습이 아니면' 다른 주방으로 옮긴 흐름

오늘 자료는 안성재 본인이 말한 세 자료다(2023년 삼프로TV 인터뷰 영상, 2024년 하퍼스 바자 인터뷰 기사, 2016년 VICE 1인칭 글). 2023년 영상에서 그는 열세 살에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 갔고, 매일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 가게를 도왔다고 돌아봤다. 그 일상이 싫었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지만 돈이 하나도 없어서, 대학 대신 미군에 지원했다. 평택에서 지내다 9·11 뒤 이라크 전쟁에 지원해 바그다드에 1년 좀 넘게 있었다. 그 뒤 포르쉐 정비사가 되려고 애리조나 정비 학교에 등록까지 마쳤다. 그러다 파사데나에서 흰 옷 입은 사람들을 보고 들어가 물었고, 요리로도 직업을 삼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요리 학교에 등록했다(24살). 요리 학교 첫날 혼자만 식당 일자리가 있었는데, "어차피 요리사가 되려는 거면은 그게 더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2016년 글은 같은 첫날을 식당 뒷문으로 가서 일을 달라고 한 날로 적는다. 접시 닦기로 시작해 굴 손질을 하고, 학교가 끝나기 전에 매니저 자리까지 올랐다. 그 뒤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 초밥집(2016년 글에서는 스시를 좋아해서 고른 LA 최고급 초밥집 우라사와)을 찾아가 거절을 여러 번 듣고도 다시 갔다. "돈 안 줘도 된다"며 들어갔고(2016년 글은 주인 셰프가 첫 달 무급과 맨 처음부터 시작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씀), 요리만 빼고 사포질·설거지·화장실 청소·예약·서빙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무언가를 되풀이해 아주 잘하게 될 때의 만족이 있었고, 그 작은 일들이 요리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도움이 됐다고 돌아봤다. 2년쯤 뒤에는 주인이 없어도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모노를 입고 일본 사람처럼 일하는 자기 모습을 두고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기 싫은데" 하는 마음이 들었고, 아무리 잘해도 그렇게 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때 프렌치 런드리 셰프가 일자리를 제안했고 그는 바로 옮겼다. 2024년 기사에서는 "저는 요리에 소질이 없어요"라며, 같이 일하던 셰프에게 "넌 왜 맨날 간이 틀리냐?"는 꾸중을 듣고 10년 넘게 피운 담배를 끊고 계속 맛보기를 연습했다고 했다.

카드뉴스

7장 · 손필기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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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 영상

2. 영상에서 말한 내용

아래는 세 자료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1. 안성재의 '아메리칸 드림' 인터뷰 (삼프로TV 유튜브, 2023)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4HCv9tabFQ8

무엇인가 — 삼프로TV의 '라이프IN넘버스'에 안성재가 나와 이야기한 42분짜리 인터뷰 영상이다. 2023년 12월 24일에 올라왔다. 진행자가 묻고 안성재가 답한다. 진행자는 영상에서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끝에 안성재가 진행자를 "김프로님"이라고 부른다. 모수를 연 곳들, 모수의 값·이름·별, 열세 살 이민, 미군과 이라크, 정비사 꿈을 접고 요리 학교에 간 일, 초밥집과 프렌치 런드리, 모수 샌프란시스코가 문 닫을 뻔한 일, 어머니의 물음, 앞으로의 계획을 차례로 말한다. 제목에 '흑백요리사'가 들어 있지만, 영상 안에서는 흑백요리사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왜 — 진행자는 한식이 세계 미식을 이끈다는 말이 많다며 시작한다. 모수를 그해 한국의 유일한 쓰리스타 식당으로 소개한다. 먼저 모수와 미쉐린 별을 묻는다. 이어서 이민·군대·요리 학교를 거쳐 셰프가 된 길을 묻는다. 끝에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다. 이민·군대·요리 학교·초밥집·모수 샌프란시스코 이야기는 2023년에 나중에 돌아본 말이다. 모수의 지금 값, 손님과 부담, 앞으로의 계획은 그때 한 말이다. 안성재가 왜 이 인터뷰에 나왔는지는 영상에서 따로 말하지 않는다.

사례 (말한 순서대로)

  • 예고 장면 [00:00~00:55] — 본편 앞에, 뒤에 나올 두 장면을 짧게 먼저 보여 준다. 하나는 외국 손님이 모수를 보고 한국 미식을 판단한다는 안성재의 말(본편 [10:47])이다. 다른 하나는 초밥집 단골손님 이야기(본편 [25:26])다.
  • 진행자 소개 [00:55~01:42] — 진행자 말이다. 한식이 세계 미식을 이끈다는 말이 많다고 했다. 뉴욕의 파인다이닝(값비싼 코스 요리를 내는 고급 식당)에서 한식이 큰 바람이 됐다고 했다. 미쉐린 가이드 뉴욕 2023에 오른 식당 가운데 11곳이 한식당이라고 했다. 안성재를 국내 최연소 미쉐린 쓰리스타 셰프로, 모수를 올해 국내 유일의 쓰리스타 식당으로 소개했다.
  • 모수를 연 곳들 [01:42~02:21] — 본인 말이다. 8년쯤 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수를 열었다. 2년쯤 하다가 한국에 오고 싶어서, 6년쯤 전에 모수 서울을 열었다. 2년쯤 전에는 홍콩에도 열었다. 코로나 때 식당 업계가 휘청했다. 고민하다가, 홍콩도 아주 좋아하는 도시라서 열었다고 했다.
  • 값이 비싼 까닭 [02:23~03:04] — 진행자는 식당에 가 보진 못했고 후기만 읽어 봤다며 "천상계의 맛과 경험이었다"는 후기를 소개했다. 안성재는 다른 식당보다 값이 조금 높다고 했다. 파인다이닝은 돈의 가치도 있지만 경험 자체가 중심이라고 했다. 특별한 경험을 주려면 노력이 많이 들어서 그 값이 됐다고 했다.
  • 이름 '모수' [03:06~04:11] — 본인 말이다.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 가족과 집 뒤 들판에 갔더니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 있었다. 식당을 열 때, 손님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하니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을 이름에 넣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엔 '코스모스'로 짓고 디자인까지 했다. 하지만 식당보다는 미용실 같은 이름이라 바꿨다. 코스모스라는 뜻은 마음에 두고, 세상에 없는 낱말 '모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로고를 만들었다고 했다.
  • 별 셋의 뜻 [04:14~05:18] — 진행자는 미쉐린을 '맛집'이나 '비싼 집'으로 오해하기도 한다며 그 뜻을 물었다. 안성재는 문을 연 첫해에 별 하나, 둘째 해에 별 둘, 그리고 3년쯤 뒤에 별 셋을 받았다고 했다. 미쉐린은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왔을 때 어디로 갈지 알려 주는 안내서라고 했다. 그래서 한 번 반짝 잘하는 곳보다, 늘 고른 수준을 지키는 곳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고 했다.
  • 진행자가 본 〈지로의 꿈〉 [05:21~06:47] — 진행자 말이다. 전 세계에 별 하나 이상을 받은 식당이 3,400여 곳이고, 그중 별 셋은 140여 곳이라고 찾아봤다고 했다. 쓰리스타 식당엔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넷플릭스에서 일본 초밥 장인이 나오는 〈지로의 꿈〉을 세 번 봤다고 했다. 지하의 평범한 가게인데 쓰리스타였다. 그 장인은 손의 검버섯이 짙어지지 않게 여름에도 흰 장갑을 꼈다. 진행자는 그런 프로 정신이면 별 셋을 받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 미쉐린이 보는 것 [06:47~07:46] — 본인 말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무엇을 보는지 말해 주지 않고, 숨기는 걸 잘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자기가 보기엔 '전체 경험'인 것 같다고 했다. 스키야바시 지로는 지하철역 지하에 있어도, 다른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을 준다고 했다. 셰프의 감성과 문화, 초밥에서 특히 중요한 정신까지 스며들면 특별한 경험이 된다고 했다.
  • 첫 값 24만 원 [07:46~09:39] — 본인 말이다. 미국에서 와서 시장 조사를 했더니, 그때(2017~2018년) 한국에는 저녁 코스가 18만 원을 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럼 내가 제일 비싼 식당이 돼야겠다" 하고 24만 원으로 정했다. 함께 투자한 파트너들은 시장에 맞추라며 말렸다. 안성재는 "그 선에서 벗어나서 치고 나가야지만 발전이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준다면 자기도 좋고, 주변 동료 셰프들에게도 좋다는 뜻으로 말을 이었다. 재료값과 인건비는 오르는데, 손님이 내는 값이 거기 맞지 않으면 계산이 안 나온다. 그러면 제일 좋은 재료는 비싸서 못 쓰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식당이라고, 최고의 음식을 내겠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런데 비싸니까 값을 내려 18만 원을 받자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제일 좋은 걸 사서 제값을 받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물론 많은 욕을 먹었죠"라고 했다. 그래도 가치를 알아준 손님들 덕에 잘 자랄 수 있었고, 지금은 저녁 한 사람에 37만 원이라고 했다.
  • 돈을 모아 오는 손님, '대표'라는 부담 [09:41~11:21] — 본인 말이다. 손님들은 돈이 많은 사람만 먹는 곳이라고 농담으로, 또는 진지하게 말한다고 했다. 가장 고마운 손님 가운데 하나는 적금처럼 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오는 분들이라고 했다. 그분들은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친구 선물 같은 특별한 날에 기대를 안고 온다. 그런 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커서, 자꾸 쳐다보며 잘 계시는지 살핀다고 했다. 외국 손님은 한국의 유일한 쓰리스타인 모수에서의 경험으로 한국 미식을 판단하려 한다고 했다. 자기가 나서서 된 건 아니지만, 자리 자체가 '대표'처럼 돼서 부담이 많다고 했다. 한국 미식이 얕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한국에 있는 많은 좋은 것을 잘 전하려 한다고 했다.
  • 열세 살 이민, 부모님의 장사 [11:21~13:16] — 열세 살 때 가족과 함께 샌디에이고로 이민 갔다. 안성재는 돌아보면 어려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양말 가게, 티셔츠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매니저가 됐다. 나중에는 티셔츠 가게와 옷 가게를 했고, 그 뒤엔 쇼핑몰 같은 곳에서 미국식 중국 음식점(그 지역 브랜드)도 했다. 안성재는 요리사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래도 매일 학교가 끝나면 가게에 들러 부모님을 돕고 음식을 만드는 게 일상이었다고 했다.
  •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간 가족 [13:16~15:06] — 진행자는 이민은 뿌리를 뽑아 다시 심는 일이라, 부모님이 훨씬 힘드셨을 거라고 했다. 안성재는 그럴 것 같다며, 지금 자기도 아이가 둘이라고 했다. 그때 아버지는 막내인 자기까지 아이 셋을 데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아무것도 없이 갔다고 했다. 아버지가 나중에 말해 주길, 82년식 올즈모빌 같은 차를 사고 나니 은행에 남은 돈이 없었다고 했다. 공항엔 아는 가족이 나와 줘서 이민 생활은 비교적 잘 시작했다고 했다. 진행자는 처음 이민 갔을 때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직업이 정해진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델리 가게를 하는 삼촌이 나오면 델리 가게를 하는 식이라고 했다.
  • 대학 대신 미군 [15:06~16:18] — 본인 말이다. 대학에 가려다가, 매일 부모님을 돕는 게 어린 나이에는 "일상이 좀 싫었어요"라고 했다. 대학에 가도 계속 도와야 할 것 같았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돈이 하나도 없어서 "미군을 가면은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겠다" 생각하고 미군에 지원했다. 실제로 미국 동부, 유럽, 한국(평택)에서 지냈다. 평택에 있을 때 9·11 테러가 일어났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자 그곳에 지원했다. 한국 생활도 아주 재미있었지만 "나는 경험을 충분히 했다라고 그때 판단을 했어요"라고 했다. 바그다드에 1년 좀 넘게 있었다.
  • 바그다드, 그리고 주변의 삶 [16:21~17:44] — 위험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위험한 상황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전쟁 안에 있으면 그런 감이 별로 없다고 했다.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맡은 게 아니라, 뒤쪽 포병 부대에 있었다고 했다. 진행자는 여행도 하고 싶고 현실도 힘들어서 군대를 고르는 교포들도 봤다고 했다. 안성재는 이민 생활에서는 여러 가지를 보게 된다고 했다. 다 나누기는 어렵지만, 총기 일과 갱단 일이 흔해서 주변에서는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 포르쉐 정비사의 꿈 [17:44~19:01] — 본인 말이다. "이라크도 갔다 왔고 뭐 한국도 갔다 왔고 저축도 좀 됐고" 해서 군대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를 아주 좋아해서 포르쉐 정비사가 꿈이었다. 이라크에서 번 돈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포츠카를 샀다. 포르쉐는 못 사고 빠른 일본 터보 차를 샀다고 했다. 군대를 나와 부모님 일을 돕다가, 몸이 안 좋아진 부모님이 가게를 접는 걸 도왔다. 그리고 애리조나의 좋은 정비 학교에 등록하고, 룸메이트와 통화까지 마쳤다고 했다.
  • 파사데나에서 본 요리 학교 [19:01~20:26] — 본인 말이다. 로스앤젤레스 근처 파사데나를 지나다가,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건물 앞에 모여 있는 걸 봤다. 들여다보니 요리 학교(르 코르동 블루라고 했다)였다. 요리로 직업을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었다며 "이런 옵션이 있구나"라고 했다. 들어가서 무엇인지 물었고, 상담하는 분의 설명이 너무 흥미로워서 바로 등록했다. 애리조나 정비 학교엔 전화해 학비를 돌려받고 서류를 정리했다. 그때 갑자기 내리는 결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정비사에서 셰프로, 완전히 다른 길을 24살에 정했다고 했다.
  • 요리 학교 친구들과 달랐던 생각 [20:26~21:19] — 본인 말이다. 군대와 전쟁을 다녀와 경험이 많았다기보다, 그냥 그곳에 모인 친구들과 생각이 좀 달랐던 것 같다고 했다. 그때 24살이었다. 6학년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양말을 팔았다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 가장 많이 남은 기억은 학교가 끝나고 손님에게 티셔츠를 판 일이라고 했다. 정식 가게가 아니라 스왑밋(벼룩시장 같은 장터)에서 장사했다고 했다.
  • 요리 학교 첫날의 박수 [21:19~23:09] — 진행자가 졸업 뒤 어디서 일했는지 묻자, 요리 학교 첫날 이야기를 했다. 첫날 학교에서 박수를 받았는데, 모든 학생 가운데 혼자만 식당 일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들 졸업하고 일하러 가지만, 안성재는 "어차피 요리사가 되려는 거면은 그게 더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첫날부터 학교가 끝나면 식당으로 일하러 갔다. 처음엔 요리가 아니라 접시를 닦았다. 몇 달 뒤엔 굴을 씻고 까는 일을 했고, 자연스럽게 재료를 만지는 일이 늘었다. 경험과 느낌이 쌓일수록 만들 수 있는 음식의 폭이 넓어진다고 했다. 1년 반~2년 과정인 학교가 끝나기도 전에 매니저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다음에 그곳을 맡은 셰프가, 여기 있지 말고 다른 데로 가라며 추천해 줬다고 했다.
  • 아무나 못 들어가는 초밥집 [23:09~25:21] — 본인 말이다. 친구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서부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일식당이 있는데,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안성재는 "아무나 못 들어가 내가 들어가야겠다" 했다. 전화로 일을 찾는다고 하자 바로 끊었다. 두세 번 걸어도 계속 끊었고, 다음 날까지 사흘쯤 그랬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일하고 싶다고 하자, 미국 사람은 안 되고 한국 사람도 안 되고 일본 사람만 찾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성재는 한국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분이 그게 편했던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다시 가서, 어제 말을 잘못한 것 같다며 "일본 사람처럼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지 않느냐는 말에 모르지만 하겠다고 했지만, 또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그다음에 또 갔을 때, 홀을 보던 그분의 동생이 자꾸 오는데 앉아서 얘기 좀 해 보라고 했다. 이야기 끝에, 일본 사람도 아니고 일식 경력도 없어 믿을 수 없으니 돈은 못 준다는 말을 들었다. 안성재는 "돈 안 줘도 된다"며 시켜만 달라고 했다. 집세와 생활비를 생각하면 막막했지만, 일단 가 보자고 했다. 2~3주 뒤, 진심을 느꼈는지 돈을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2년쯤 지나서는 그분이 출근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어요"라고 했다.
  • 결승 전날의 단골손님 [25:21~27:10] — 본인 말이다. LA에서 한국과 일본이 야구 대회를 치를 때였다. 한국이 두 번쯤 이기고, 결승에서 또 일본을 만났다. 결승 전날, 안성재가 한국 사람인 걸 아는 일본 단골손님 한 사람이 가게에 왔다. 그 손님은 한국에 두 번 져서 기분이 나쁘다며, 말을 좀 심하게 했다. 안성재는 경쟁이니 화가 날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자기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일하는 자리였고 이름난 손님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보다 애국심이 더 강하다고 했다. 이건 자기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 일본 사람처럼 보이는 나 [27:10~28:06] — 본인 말이다. 그때 안성재는 기모노를 입고, 스키야바시 지로의 셰프처럼 머리를 밀고, 나막신(게다)을 신고 다녔다. 누가 봐도 겉모습은 일본 사람이었다. 그건 가게의 유니폼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초밥을 만들면 멋있기도 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며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기 싫은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잘해도, 이런 모습으로 일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일식을 하는 셰프들 중 존경하는 분이 많고, 그건 그분들의 선택이라고 했다. 다만 자기는 미국에서의 삶과 할머니·할아버지의 말씀을 모두 놓고 보니, 이렇게 하기 싫었다고 했다.
  • 프렌치 런드리에서 온 제안 [28:06~30:04] — 본인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바로 위 나파 밸리의 작은 마을 욘트빌에 쓰리스타 식당 '더 프렌치 런드리'가 있다. 그때 모든 매체가 세계 최고의 식당이라고 했다.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를 알리려고 레이스 달린 봉투, 색깔 봉투처럼 저마다 다른 편지를 보냈다. 그런 편지가 전 세계에서 하루에 천 통씩 온다더라고 했다. 안성재는 자기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의 셰프가 초밥을 먹으러 와서 안성재 앞자리에 앉았다. 그 셰프도 한국 분이고, 안성재가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다. 식사를 마친 그 셰프가 프렌치 런드리에서 같이 일하면 어떠냐고 일자리를 제안했다. 안성재는 바로 갔다. 초밥집에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하고, 같은 차에 짐을 싣고 북쪽으로 갔다.
  • 모수 샌프란시스코, 문 닫기 직전 [30:04~35:18] — 본인 말이다. 프렌치 런드리와 다른 식당을 거쳐 경력을 쌓고, 2015년에 샌프란시스코에 모수를 열었다. 가족은 걱정이 많았다. 새로 연 식당은 대부분 오래 못 간다고 했다. 모수도 처음엔 잘되지 않았다. 그때 샌프란시스코는 세계 최고의 미식 도시로 꼽혔고, 실리콘 밸리 돈이 많이 돌았다. 하지만 집세와 물가도 함께 올랐다. 미국에서는 도시 신문의 식당 평이 식당을 닫게도, 살리게도 할 만큼 힘이 컸다. 샌프란시스코 신문의 평론가가 다녀가 글을 썼다. 음식은 맛있지만 공간이 이상하고 공사를 하다 만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안성재는 있는 돈을 다 긁어모아 만든 공간이었다고 했다. 글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로 연 식당 가운데 가장 비싸다는 내용도 있었다. 안성재는 더 비싼 식당도 많았지만, 문을 열 때 값으로 따진 말이었다고 했다. 그 뒤 손님이 크게 줄었다. 단골과 팬들이 도와준 덕에 버텼다. 하지만 8개월쯤 됐을 때 함께하던 분에게 아무래도 닫아야겠다고 했다. 미쉐린이 곧 나오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보자, 8월까지 하고 닫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쉐린이 주는 느낌은 지금 한국과 많이 달랐다고 했다. 모수는 별 하나를 받았고, 안성재는 "죽다 살아났죠"라고 했다. 그 뒤로 문을 닫는 날까지 계속 자리가 꽉 찼다고 했다.
  • 어머니의 물음 [35:18~38:19] — 본인 말이다. 이민 와서 요리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했다고 했다. 처음 별을 받았을 때는 성공했다는 것보다 감격이 컸다. 그래서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어머니는 이미 찾아보고 알고 계셨다. 가게를 닫느냐 마느냐로 힘들어하던 것도 알고 계셨다. 어머니는 이민 올 때 생각이 난 듯, 너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진 거냐고 물었다. 안성재는 그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요리사인 자기가 보는 눈과 달리,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이민 와서 삶을 개척한 사람이라 말 못 할 것들이 많았을 거라고 했다. 그 물음에서 그런 것까지 다 느껴졌다고 했다. 안성재는 그런 것 같다고 답했고, "물론 이게 다 끝은 아니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어머니의 떨리던 목소리와 그때 자기가 느낀 감정이, 별 셋을 받았을 때보다 더 마음에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서 부모님은 스스로는 아메리칸 드림을 못 이뤘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나온다. 누가 한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진행자가 아메리칸 드림은 원래 다음 세대나 그다음 세대에 이뤄지는 거라고 하자, 안성재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 진행자의 어머니 이야기, 영상 인사 [38:19~39:54] — 진행자 말이다. 진행자는 늦은 나이에 미국에서 가게를 했을 때, 찾아온 어머니가 크게 실망했던 일을 꺼냈다. 공항에서 배웅할 때 어머니가 한 번 돌아보던 모습이 기억나고,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 생각했다고 했다. 그 뒤 한국에 올 기회가 생겨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서 이 영상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에 올라가니, 켄터키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해 보라고 권했다. 안성재는 어머니에게 유튜브에 나왔다며, 보고 싶다, 사랑한다, 연락드리겠다고 인사했다.
  • 앞으로 [39:55~41:53] — 본인 말이다. 미쉐린 별은 해마다 새로 나온다고 했다. 프랑스에는 별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셰프도 있었다며, 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별이 자기를 집어삼키게 두면 안 된다고 했다. 외국 사람이 한국 대표가 누구냐고 물을 때 모수를 꼽아 주니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이제는 그 부담을 조금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다들 한국의 미식 문화를 대표한다고 말해 주니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고 했다. 모수 홍콩에서도 한식과 한국 재료, 문화를 많이 고민해서 가지고 나가려 한다고 했다. 진행자는 미국의 어머니가 드셔도, 어느 서양 사람이 와도 모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한국의 맛이 있다고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안성재가 다른 한국 셰프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길 바란다고 했다. 안성재는 자기가 생각한 걸 정확히 말해 줬다고 답했다.
  • 마무리 [41:53~42:41] — 진행자 말이다. 투자를 잘해서 모수에 한번 가 보겠다고 했다. 이 영상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아침에 올라간다며, 미국의 부모님과 친구, 지인, 손님들에게도 미리 알려 달라고 했다.

2. '흑백요리사' 안성재 인터뷰 (하퍼스 바자 코리아, 2024)

링크: https://www.harpersbazaar.co.kr/article/1872086

무엇인가 — 하퍼스 바자 코리아가 2024년 10월 22일에 낸 문답 인터뷰 기사다. 제목은 "'흑백요리사' 안성재와의 '이븐'한 인터뷰"이고, 글쓴이 자리에 손안나라고 적혀 있다. 넷플릭스 요리 경연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심사위원으로 나온 셰프 안성재가 답한다. 묻는 쪽은 '하퍼스 바자'라는 이름으로만 적혀 있다. 물음 24개가 이어진다. 앞쪽은 그의 식당 모수와 방송 이야기다. 가운데는 어린 시절과 요리를 버틴 이야기다. 끝은 요리사의 자질과 '다음 요리' 이야기다.

왜 — 기자는 이 글을 왜 썼는지 따로 적지 않았다. 부제는 "급식대가부터 나폴리맛피아까지, 안성재가 들려주는 '흑백요리사' 비하인드 스토리"다. 기자가 나폴리 맛피아를 '우승자'라고 부른다. 그러니 방송 결과가 나온 뒤, 심사 뒷이야기와 그가 셰프가 되기까지를 묻는 자리다. 인터뷰한 날은 기사에 없다. 모수·방송·심사 이야기는 그때(2024년) 한 말이다. 어린 시절, 이민, 담배를 끊은 일, 요리를 시작한 뒤 힘들던 때, 미쉐린 별을 받고 자만하던 때는 나중에 돌아본 말이다.

사례 (기사에 나온 순서대로)

  • 모수 다시 열기 — 기자가 모수 서울이 다시 문을 연다고 들었다고 했다. 본인 말이다. 문을 여는 건 아마 내년 2월쯤이라고 했다.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원하는 색깔과 디자인, 구조까지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라고 했다. 메뉴는 고민이 많다고 했다. 아직 모수에 와 본 사람보다 안 와 본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서라고 했다. 변화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모수를 좋아해 준 사람들이 기억하는 스타일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공간은 달라져도 "모수의 DNA"는 그대로 두고 조금씩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
  • 약과 — 모양은 그대로, 만드는 법은 10번 이상 고침 — 기자가 개업 때부터 지금까지 남은 유일한 메뉴가 할머니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약과라고 했다. 본인 말이다. 할머니는 '약과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약과를 직접 만들어 팔았다고 했다. 예전엔 그 냄새가 싫었는데, 지금은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라고 했다. 더 맛있는 디저트를 하라는 불만도 가끔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약과는 손님에게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정성이고, 자기 고집이자 모수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사실 할 수 있는 디저트야 수백, 수천 가지죠. 문제는 기준이에요." 겉모양은 7년 전과 같지만 만드는 법(레시피)은 10번 이상 고쳤다고 했다. 꽃이나 금가루를 올려 호감을 사려는 변화는 피한다고 했다. 가장 단순하게 담은 접시 안에 가장 복잡한 맛을 넣어, 손님이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했다. 배만 채우고 가는 게 아니라, 모수에서의 경험이 손님의 삶을 더 충만하게 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 서버의 무용 수업 — 기자가 모수에서는 서버(음식을 내는 직원)도 무용 수업을 듣는다고 들어 놀랐다고 했다. 본인 말이다. 한국에서는 서빙을 직업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조금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안무가나 배우, 의사처럼 외식업, 특히 서비스 일에도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식당은 요리사만 잘해서 굴러가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음식을 내는 몸짓에 배려와 아름다움이 담겨야 한다고 했다. 그 표현을 배우는 방법 하나가 발레나 현대무용이라서 무용 수업을 권했다고 했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천지 차이니까요."
  • 완벽주의자냐는 물음 — 예전엔 자만했다 — 기자가 웃으며 완벽주의자냐고 물었다. 본인 말이다. 스스로는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며 웃었다. 손님이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애쓰는 것이지, 자기 만족을 위한 게 아니라고 했다. 예전엔 꽤 자만했다고 했다. 미쉐린(식당에 별을 매기는 안내서) 별 1개, 2개를 받고 나서 '내가 최고다'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일을 계속하며, 모든 걸 아는 게 아니고 더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멘토 셰프들도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때 가장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흑백요리사〉에서 높이 오른 젊은 셰프들이 '내가 최고다'라고 하면 박수를 쳐 준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나중에 더 성숙해질 거라고 했다. 인생에는 그런 단계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건 멋이 없는 거죠."
  • 젊은 셰프들 — 선배 노릇이 아니다 — 기자가 트리플스타·요리하는 돌아이·나폴리 맛피아 같은 젊은 셰프들을 귀여워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본인 말이다. 다들 치고 올라오려 해서 뿌듯하다고 웃었다. 요리하는 삶이 어떤지 알기에, 도울 수 있으면 최대한 돕는다고 했다. 하지만 선배 노릇은 아니라고 했다. 셰프 경력이 1년밖에 안 됐어도 각자 자기 식당의 사장이자 셰프라고 했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했다. 주방에서 늘 하는 말도 꺼냈다. "나이, 성별, 경력 다 내려놓고 실력으로 평가 받아라."
  • 모수의 주방 — 엄격하다 — 기자가 파인 다이닝(코스로 내는 고급 식당)은 주방 문화와 규율이 중요하다며 모수의 주방을 물었다. 본인 말이다. 모수의 주방은 굉장히 엄격하다고 했다. 직원들이 자기에게 말도 함부로 걸지 못한다고 했다. 손님에게 나갈 음식 앞에서 가볍게 구는 건 예의가 아니고, 모든 건 자세에서 나온다고 믿는다고 했다. 재미보다 요리에 집중해 프로답게 일하는 데서 보람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때로는 배우고 싶으면 말 말고 일부터 하라, 나중에 이해할 거라고 세게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 대부분 도망간다며 웃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수에서 일한 사람들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했다. 요리 전에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치고, 그걸 풀어내고, 끝까지 마무리하는 태도라고 했다.
  • 평소엔 장난기가 많다 — 기자가 요리하는 돌아이가 심사 직전 "라면은 짝수부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자, 그가 무심하게 "아주 바람직한 생각이네요"라고 한 장면에 웃었다고 했다. 그리고 평소 장난기가 있냐고 물었다. 본인 말이다. 요리로 장난치는 건 정말 싫지만 평소엔 장난기가 많다고 했다. 집에서는 거의 '바보 아빠'이고, 가족 중 서열이 제일 아래라고 했다. 가부장적인 면은 전혀 없고, 아이들도 자유롭게 자란다고 했다. 아이들이 방송을 보고 놀리고 흉내도 내는데, 그 안에 자랑스러워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 셰프도 과자와 라면을 먹는다 — 기자가 셰프에 대한 흔한 편견을 꺼내며, 집에서도 요리하는지 물었다. 촬영 소품으로 가져온 감자칩도 맛있게 먹더라고 했다. 본인 말이다. 잘못된 편견이라고 했다. "과자가 얼마나 맛있고, 라면이 얼마나 맛있어요." 아이들에게 가끔 오믈렛 같은 간단한 요리를 해 준다고 했다.
  • 김해준의 흉내 영상 — 기자가 코미디언 김해준의 패러디(흉내 내는 웃음) 영상을 봤냐고 물었다. 본인 말이다. 아주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코미디를 좋아하고, 외국 코미디는 표현이 훨씬 세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흉내 내는 대상이 자기라는 것 자체가 웃겼다고 했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바로 2탄이 나왔다며 웃었다.
  • 출연 조건 두 가지 — 기자가 가장 뜻밖의 출연자였다며, 제작진의 어떤 뜻에 공감했는지 물었다. 본인 말이다. 출연 제안이 고마웠고,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고 했다. 첫째, 매일 식당에서 일하는 셰프로서 직업에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대부분 TV에 비치는 셰프의 모습은 재미를 위해 꾸미거나 부풀린 모습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자기가 폼을 잡고 접시를 던지는 식의 모습은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둘째, 방송이 무조건 외식업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했다. 얼마 뒤 제작진이 "안 셰프님이 원하는 걸 모두 반영하겠다"고 연락해 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제작진이 그 뜻을 정확히 이해했고, 끝까지 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결과물과 시청자 반응, 외식업계의 좋은 변화까지 모두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 — 급식대가 — 기자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 요리를 물었다. 본인 말이다. '급식대가'의 음식이라고 했다.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줍어하고 걱정하는 모습에 응원하고 싶어서, 오늘의 급식 메뉴가 뭐냐고 따뜻하게 물었다고 했다. 먹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고, 정신 차려 보니 반쯤 비웠다고 했다. 아직 심사할 사람이 몇십 명 남아서 멈추고 '보류'를 줬다고 했다. 마음속으론 이미 합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음식이 아니라 그냥 따뜻한 음식이라, 한 번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고 했다. 백종원 대표는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했다고 했다. 백 대표가 별로라고 했더라도, 합격을 주자고 강하게 말했을 것 같다고 했다. 백 대표도 그분의 요리 솜씨와 감성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아직도 그 음식이 또 먹고 싶고 그렇네요."
  • 어린 시절의 급식 — 한국의 마지막 기억 — 기자가 실제로 어린 시절 학교 급식을 먹은 기억이 있냐고 물었다. 본인 말이다. 동작구 강남초등학교를 6학년까지 다니다가 1993년에 이민을 갔다고 했다. 그 학교가 서울에서 처음 급식을 한 시범 학교였을 거라고 했지만, 워낙 어릴 때라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맛보다 그리운 느낌만 기억한다고 했다. 이민 뒤로 급식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마지막 기억인 셈이죠."
  • 요리에 소질이 없다 — 남보다 더 노력했다 — 기자가 부모님이 미국에서 중식당을 했다며, 물려받은 요리 DNA가 있냐고 물었다. 본인 말이다. 부모님이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미국식 중국 음식점)을 했지만, 자기가 셰프가 될 거라고는 자기를 포함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원래는 온화하고 장난기 많고 걱정 없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엄마 말 잘 듣는 '마마보이' 같은 아이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민 생활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힘을 기르고 싸움에서도 지지 않아야 했다고 했다. "저는 요리에 소질이 없어요." 대신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고, 더 많이 참았다고 했다.
  • 미각 — 담배를 끊고 연습했다 — 기자가 소금 한 톨 차이를 느끼는 미각은 타고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본인 말이다. 운동과 비슷하다고 했다.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 한 갑씩 10년 넘게 피웠다고 했다. 그때 같이 일하던 셰프에게 크게 혼났다고 했다. "넌 왜 맨날 간이 틀리냐?" 그 차이도 소금 한 톨이었다고 했다. 그때 담배를 끊기로 마음먹었고, 그 뒤 미각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했다. "그렇게 계속 연습했죠." 축구 선수가 공을 차듯, 요리사에겐 맛을 잘 보는 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했다. 지금도 손님 음식을 맛보기 전엔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그런 날은 짜장면 같은 센 맛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 요리학교 뒤 — '낙오자인가' 하는 의심 — 기자 글이 먼저 나온다. 2004년 패서디나 도로를 운전하던 24살 청년이, 르 꼬르동 블루 LA 앞에서 흰 셰프복을 입은 무리를 보고 요리학교에 들어갔다고 썼다. 셰프라는 직업이 대단하고 멋있게 느껴졌다고도 썼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 뒤 환상이 깨진 때도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본인 말이다. 환상이 깨졌다기보다, 그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다고 했다. 오랫동안 '나는 절대 미쉐린 셰프가 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맨날 욕먹고, 힘들고, 식당을 차릴 돈도 없었다고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미래가 너무 어두웠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수를 열기 전까지 '나는 요리에 대한 낙오자인가?' 하는 의심이 꺼지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 단계로 가려면 한순간을 붙잡아 기회를 잡아야 하고, 그러려면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저도 그렇게 기회가 올 때마다 조금씩 잡아나갔던 것 같아요." 그때는 너무 긴장돼서 요리하다 화장실에 가서 토하기도 했다고 했다.
  • 그만두지 않은 까닭 — 가고 싶은 길 — 기자가 그렇게 불안하고 압박이 컸는데도 요리를 그만두지 않은 까닭을 물었다. 본인 말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라며, 고생을 아주 많이 했다고 했다. 집이 없어 공원에서 자며 노숙한 적도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며 현실과 균형을 잡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신용불량자가 되든, 노숙자가 되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는 게 더 중요했어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 이상을 좇는 사람 — 기자가 이상주의자나 몽상가 기질이 많다고 했다. 본인 말이다. 인정한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우리는 이상을 좇는 사람이고 그걸 현실로 만드는 건 각자에게 달렸다고 자주 말한다고 했다. 돈을 버는 '장사'가 잘못된 길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요리사가 되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의 꿈을 최대한 현실로 만들라고 한다고 했다. 그 목표를 잃었다면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자기가 생각하는 요리사의 삶은 장사와 조금 다르다고 했다.
  • 요리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 — 인내심 — 기자가 요리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물었다. 본인 말이다. 인내심이라고 했다. "Man’s virtue is patience"(사람의 미덕은 인내다)라는 말을 들며, 참고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 했다. 이상을 좇는 것도 바보처럼 하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하는 거라고 했다. "지금 처한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산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용기를 잃지 않는 것." 이 모든 게 결국 인내심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 여럿이 만드는 압박 — 일하러 가지 않고 요리하러 간다 — 기자가 파인 다이닝은 여럿이 함께 만들고 결과도 주관적인데, 완벽을 좇는 셰프로서 압박이 없냐고 물었다. 본인 말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자기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한국과 외국에서 모수를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팀을 꾸리고, 가르치고, 그 안에 문화를 만들어야 해서 삶이 복잡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즐긴다고 했다. 식당에 갈 때 일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요리하러 간다고 했다. "그냥 좋아서 가는 거예요." 행복한 요리사는 유명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요리하는 일 자체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진리를 주방에서 배웠다고 했다.
  • 한국 외식업 — 법을 손봐야 — 기자가 한국 셰프들은 자부심과 멋으로 일하는 장인 같다고 했다. 본인 말이다. 한국 셰프들의 재능과 기술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셰프들과 이야기해 보면, 식재료 수입·수출 법이 일제시대 규제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래서 그 법들을 살펴 고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넷플릭스 프로그램 하나로 외식업이 확 살아나는 나라이니, 노력하면 충분히 자랄 수 있다고 했다.
  • 요리의 멋 — 가장 개인적인 것 — 기자가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의 요리를 보고 "요리의 멋을 안다"고 했던 일을 들며, 본인이 생각하는 요리의 멋을 물었다. 본인 말이다. 너무 칭찬했다며 웃었다. 예전에 식당에 폴란드 서커스 포스터를 걸었는데, 예술계 사람들이 왜 저런 이상한 그림을 걸었냐고 했다고 했다. 그는 표현이 억눌리던 때에도 유일하게 자유로운 표현이 허용된 장르였다고 설명했다. 그 포스터에 강한 메시지가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저는 가장 멋있는 건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심사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지금 가장 멋진 요리는 가장 그 지역다운 요리라고 했다. 서울을 가장 잘 나타내는 요리에, 셰프마다 표현하고 싶은 서브컬처(작은 무리가 즐기는 문화)를 자유롭게 더한 것이 가장 멋스럽다고 했다. 완성도가 조금 모자라도 깊이 고민해 자기 뜻을 정확히 담으면, 과일 한 접시도 가장 훌륭한 요리일 수 있다고 했다.
  • 인생 요리는 없다 — 다음 요리 — 기자가 그래서 늘 요리의 의도를 물었냐며 웃었다. 그리고 〈흑백요리사〉 미션 주제이기도 했던 인생 요리를 물었다. 본인 말이다. 인생 요리는 없다고 했다. 농구 선수가 작년에 우승했다고 내일 경기가 안 중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다음 요리예요."
  • 추억에 젖었다가 혼난 일 — 기자가 추억에 젖을 틈 없이 앞으로 가겠다는 거냐고 했다. 본인 말이다. 예전에 자기가 만든 요리를 뿌듯하게 쳐다보다가 셰프에게 혼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빨리 다음 요리 만들어야지!"
  • 그냥 요리하러 간다 — 기자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에 나오는 구절을 꺼냈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찾지만 프로는 그냥 아침에 일하러 나간다." 비슷한 뜻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본인 말이다. 누가 물으면 그냥 요리하러 간다고 말하지만, 거기엔 여러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넷플릭스도 그냥 했어요."

3. 식당 일을 다 해 본 이야기 — 안성재 1인칭 글 (VICE, 2016)

링크: https://www.vice.com/en/article/you-need-to-understand-every-aspect-of-a-restaurant-to-be-a-great-chef/

무엇인가 — VICE의 음식(Food) 꼭지에 2016년 7월 5일 실린 짧은 글이다. 제목은 "You Need to Understand Every Aspect of a Restaurant to Be a Great Chef"(훌륭한 셰프가 되려면 식당의 모든 면을 이해해야 한다)이다. 글쓴이 자리에는 안성재(Sung Anh)의 이름이 있다. 그런데 글 끝에 "As told to Javier Cabral"(하비에르 카브랄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라고 적혀 있다. 안성재가 하비에르 카브랄에게 한 말을 '나'로 시작하는 글로 옮겼다는 뜻이다. 그다음 줄은 이 글을 인터뷰라고 부르고, 길이를 줄이고 알아보기 쉽게 다듬었다고 적었다. 질문은 실려 있지 않다. 안성재의 말만 이어진다. 글 끝 소개 글을 보면, 그때 안성재는 샌프란시스코의 새 식당 모수(Mosu)의 셰프이자 주인이었다. 본문 사이에는 모수 요리 사진이 들어 있다.

왜 — 질문이 실려 있지 않아서, 무엇을 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왜 이 글을 싣게 됐는지도 따로 적혀 있지 않다. 글은 셰프가 되기까지 해 본 식당 일을 돌아보고, 식당은 음식만의 일이 아니라는 말로 끝난다. 군대에서 나와 요리를 시작한 일, 워터 그릴, 우라사와 이야기는 나중에 돌아본 말이다. 모수를 연 지 넉 달째라는 말과 모수를 꾸려 가는 이야기는 그때(2016년) 한 말이다. 인터뷰한 날은 적혀 있지 않다.

사례 (글 순서대로. 문단 1~11은 안성재가 한 말을 1인칭 글로 옮긴 것이다)

  • 군대에서 막 나와 정비사를 생각하다 (문단 1) — 안성재는 음식 업계에 들어올 때 꽤 "street-minded"(길거리 물이 든) 태도였다고 했다. 그때 막 군대에서 나왔다. 군 복무 중에 하던 일이 정비였다. 그래서 정비사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 사촌의 물음 (문단 2) — 그러다 어느 날 사촌 한 명이 "What about a job in cooking?"(요리 일은 어때?)이라고 물었다. 부모님이 예전에 패스트푸드 중국 음식점을 했었다. 그래서 한번 해 봤다고 했다. 그 뒤 요리학교에 가기로 했다.
  • 학교 첫날, 뒷문으로 — 워터 그릴 (문단 3) — 요리학교 첫날, 워터 그릴에 설거지 담당으로 들어갔다. 데이비드 르페브르(David Lefevre) 셰프 밑이었다. 전문 주방에서 일해 본 적은 없었다. 식당 뒷문으로 가서 일을 달라고 해서 들어갔다고 했다. 점점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음식의 양을 더 중요하게 보는 식당이라,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가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It was an oyster bar, after all."(어쨌든 굴 요리 바였으니까.) 좋은 첫 경험이었지만, 1년이 지나자 다른 걸 해야 했다고 했다.
  • 스시를 좋아해서 — 우라사와를 목표로 (문단 4) — 안성재는 스시 먹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고급 스시집에서 일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고급인 곳, 베벌리힐스의 우라사와에서 일하는 걸 자기 "mission"(임무)으로 삼았다. 쉽지 않았다. 주인 셰프가 받아 주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끊었고,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열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안성재는 "I took this guy as a challenge."(나는 이 사람을 도전으로 받아들였다.)라고 했다.
  • 문이 열리다 — 두 가지 조건 (문단 5~6) — 어느 날 주인 셰프가 마침내 문을 열어 주었다. 안성재는 "I want to work here!"(여기서 일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주인 셰프는 조건 두 가지를 걸었다. 첫째, 첫 달은 돈을 주지 않는다. 둘째, "I had to start from scratch"(맨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안성재는 새 기술을 배우러 요리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우라사와에서 맡은 일은 "everything but cooking"(요리만 빼고 전부)이었다고 했다. "I did all the dirty work"(궂은일은 다 했다)라고 했다. 사이프러스 나무로 된 스시 바를 사포로 다듬고, 설거지를 더 하고, 쓸고, 걸레질하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예약을 받고,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주고, 서빙을 했다.
  • 되풀이해서 잘하게 되는 만족 (문단 7) — 요리학교 졸업을 향해 잘 가고 있던 요리사에게는 말이 안 되는 일들이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는 괜찮았다고 했다. 버티는 데는 미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한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무언가를 되풀이해서 아주 잘하게 될 때 오는 만족감이 있었다고 했다. "even if that something is cleaning the toilet"(그게 변기 청소라 해도) 그렇다고 했다.
  • 더 잘, 더 빨리 — 30명 가운데 혼자 (문단 8) — 하다 보면 더 잘하고 더 빨라진다고 했다. 그러다 테이블이 아주 깨끗하고 매끈해진 순간을 즐기게 된다고 했다. 손님이 테이블이 완벽했다는 걸 알아봐 주면 더 기쁘다고 했다. 직원 30명 가운데 주인 셰프의 지시와 거친 말을 버틴 사람은 자기 하나였다고 했다. 몇 시간 만에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는 채소를 썰고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요리가 아닌 그 작은 일들이 요리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도움이 됐다고 했다.
  • 일하면서 졸업까지 (문단 9) — 안성재는 온종일 일하면서(풀타임) 요리학교를 졸업했다. 그때는 잠을 많이 못 잤다. 그래도 시작한 걸 끝내고 싶었다고 했다. 10년 뒤, 그 모든 경험에서 얻은 규율(스스로를 다잡는 힘)이 샌프란시스코에 첫 식당을 여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 식당은 음식만이 아니다 (문단 10) — 안성재는 다들 알듯이 "a restaurant is not just about the food"(식당은 음식만의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물류(재료와 물건을 들이고 나르는 일), 시스템, 서비스, 그 밖에 식당에서 돌아가는 모든 것이라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적은 예산으로 식당을 열면 엄청난 노동이 든다. 안성재는 이 깨달음이 우라사와 시절에 뿌리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예약을 모두 받고 이메일을 보내는 일을 즐긴다고 했다. 매니저 역할도 즐기고, 물론 요리도 여전히 즐긴다고 했다. 그때 한 말이다.
  • 넉 달째, 살아남기 (문단 11) — 지금은 문을 연 지 넉 달째이고, 살아남는 게 전부라고 했다. 그래도 지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기도 없었을 거라고 했다. 그 경험은 "working every restaurant job that you can think of—glamorous or otherwise"(떠올릴 수 있는 온갖 식당 일을 해 본 것, 화려한 일이든 아니든)라고 했다. 그때 한 말이다.
  • 글 끝 (문단 12~14) — 안성재의 말이 아니라, 글 끝에 따로 붙은 글이다. 하비에르 카브랄에게 들려준 이야기라는 것과, 이 인터뷰를 길이를 줄이고 알아보기 쉽게 다듬었다는 것이 적혀 있다. 이어서 안성재를 소개한다. 소개는 모수를 샌프란시스코에 새로 연 현대 미국식 가이세키(일본식 코스 요리) 스타일 식당이라고 적었다. 그전에 일한 곳으로 베누(Benu), 프렌치 런드리(The French Laundry), 우라사와(Urasawa), 워터 그릴(Water Grill)을 들었다. 베누와 프렌치 런드리는 이 목록에만 나온다. 본문에는 두 곳 이야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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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리 학교로 간 계기가 자료마다 다르다. 1번 영상(2023)은 파사데나를 지나다 흰 옷 입은 사람들을 보고 들어가 물은 뒤 바로 등록했다고 한다. 3번 글(2016)은 사촌이 "요리 일은 어때?"라고 물었고, 부모님이 중국 음식점을 했어서 해 본 뒤 요리학교에 가기로 했다고 한다. 2번 기사의 2004년·24살·패서디나 이야기는 본인 답이 아니라 기자 질문 글이다.
  • 정비사를 생각한 까닭도 다르다. 1번은 차를 아주 좋아해서 포르쉐 정비사가 꿈이었다고 하고, 3번은 군 복무 중 하던 일이 정비라서라고 한다.
  • 1번에서 '저축도 좀 됐고' 하고 군대를 나왔다고 한 바로 뒤에, 이라크에서 번 돈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스포츠카를 샀다고 했다.
  • 첫 식당(굴 요리 식당)을 떠난 까닭: 1번은 매니저 자리까지 오른 뒤 그곳을 맡은 셰프가 다른 데로 가라고 권했다고 한다. '더 올라갈 데가 없다'는 말은 1번에 없다. 3번은 본인이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가 정해져 있어 1년이 지나자 다른 걸 해야 했다'고 한다.
  • 초밥집의 돈 이야기: 1번은 본인이 "돈 안 줘도 된다"며 시켜만 달라고 했고 2~3주 뒤부터 조금씩 받았다고 한다. 3번은 주인 셰프가 '첫 달은 돈을 주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 초밥집을 고른 까닭: 1번은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 소문, 3번은 스시를 좋아해서 LA에서 가장 고급인 곳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다. 초밥집 이름(우라사와)은 3번에만 나온다. 사포질·설거지·화장실 청소·예약·서빙 같은 잔일 목록도 3번에만 있다.
  • 프렌치 런드리는 1번에서만 이야기가 나온다. 그곳 셰프(한국 분)가 초밥을 먹으러 왔다가 일자리를 제안했다. 3번에는 일한 곳 목록에만 있다.
  • 간이 틀린다는 꾸중과 담배를 끊은 이야기는 2번에만 있다. 언제, 어느 식당 일인지는 기사에 없다.
  • 모수 샌프란시스코를 연 해는 1번 본인 말로 2015년이다. 3번 글은 2016년 7월에 실렸고 '지금 문을 연 지 넉 달째'라고 한다.
  • 1번(2023)과 2번(2024)의 미쉐린 별·값·식당 이야기는 그때 기준이다.
  • 2번의 "신용불량자가 되든, 노숙자가 되든"은 '그렇게 되더라도'라는 뜻이다. 신용불량자가 됐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노숙한 적이 있다는 말은 따로 있다.

3. 내 필기와 정리

  • 10월 17일 손필기 — 안성재의 학습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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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 제목은 D-76(10-17), 각자가 성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학습방식이다. 대상은 안성재, 직업은 셰프로 적었다.

  1. 백그라운드: 6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못 해 외톨이로 지낸 아이. 부모님 식당 일을 도우며 삶.
  2. 계기 why: 매일 부모님을 돕는 생활이 싫었다. 여행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대학 대신 미군에 들어감.
  3. ⇓ what 목표: 군대에 들어가 공짜로 세계를 돌며 여러 가지 겪어 보기.
    • 그 아래 ⇓ 옆에 "여행하고 싶은데 돈이 ✕"라고 덧붙였다.
  4. how 행동: 군대에서 이라크에 1년 정도 있음 → '갔다 왔고 저축도 함' → 군대를 나와 정비사 가려고 함(?).
    • 그 아래 ⇓ 옆에 "요리로도 살 수 있는 걸 알게 됨"이라고 적었다.
  5. what 목표2: 정비 학교를 취소하고 요리 학교에 등록했다. 하고 싶어서 지원.
  6. ⇓ how 행동2: 졸업을 기다리지 않고 학교 첫날부터 식당 뒷문을 찾아가 접시 닦기를 함 → 굴 손질 → 매니저까지 올랐다 → 더 올라갈 곳이 없어 셰프가 '딴 곳 가라' 함
  7. what 목표3: → 가장 어려운 초밥집을 선택함.
  8. ⇓ how 행동3: 돈 안 줘도 되니 시켜 달라고 해서 들어감. 요리 빼고 사포질·화장실 청소·예약·서빙을 되풀이함 → 모든 일을 잘할 수 있게 됨.
    • 그 아래 ⇓ 옆에 "일본 사람처럼 일하는 내 모습이 싫음"이라고 적었다.
  9. what 목표4: 프렌치 런드리로 가서 일을 시작함.
  10. ⇓ how 행동4: 간이 맨날 틀리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담배를 끊어서 맛보기를 계속 연습.
  11. ⇓ conclusion 결론: 아래 4번에 옮겼다.

필기는 백그라운드 → 계기(why) → 목표(what) → 행동(how) → 목표2 → 행동2 → 목표3 → 행동3 → 목표4 → 행동4 → 결론의 흐름으로 적었다. what 목표 칸과 how 행동 칸이 네 번 번갈아 나온다. 칸과 칸 사이는 ⇓ 화살표로 이었고, 화살표 세 곳 옆에는 다음 칸으로 넘어간 까닭을 짧게 적었다(목표 아래 '여행하고 싶은데 돈이 ✕', 행동 아래 '요리로도 살 수 있는 걸 알게 됨', 행동3 아래 '일본 사람처럼 일하는 내 모습이 싫음'). 행동 칸 안에서는 한 일과 그다음 일을 → 로 이었다. 행동2 칸의 마지막 → 는 줄을 바꿔 목표3 칸("→ 가장 어려운 초밥집을 선택함")으로 바로 이어진다.

읽기 어려운 곳: 행동 칸 끝은 '가려고 함'으로 읽었다(글자가 흐리다). 결론 칸의 '것을'은 '걸을'로도 보이고, '과감히' 다음 낱말은 '전진해'로 읽었지만 '전환해'일 수도 있다.

필기의 여러 칸은 에이전트가 만든 필기 그림의 「✍️ 필기 한 줄」 문장과 거의 같다. 백그라운드·계기·목표 칸은 필기 그림의 🏠·💡·🧭 칸 한 줄과 같고, 행동 칸은 👣 행동 칸 한 줄의 둘째 줄(이라크 → 저축 → 정비사)과 같다. 목표2 칸은 「다시 잡은 목표 ①」 한 줄에 '하고 싶어서 지원'을 붙였다. 행동2·목표3 칸은 「하고 개선 ①」 한 줄, 행동3 칸은 「하고 개선 ②」 한 줄과 같다. 행동3 아래 '일본 사람처럼 일하는 내 모습이 싫음'은 「다시 목표 잡기 ③」 새 계기 한 줄에서 왔다. 목표4 칸과 행동4 칸은 「다시 잡은 목표 ③」·「하고 개선 ③」 한 줄을 줄인 것이다. 결론 칸은 필기 그림 ✅ 결론 칸의 에이전트 제안 문장("하고 싶은 걸 몰랐지만, 궁금한 걸 보면 들어가 물었다 … 잘하게 돼도 내 모습이 아니면 떠났다")을 바탕으로 했지만, 끝을 '계속 나아가면서 … 과감히 전진해(?) 나아감'으로 바꿔 썼다. 필기 그림의 모수 샌프란시스코·모수 서울 이후 바퀴(다시 목표 잡기 ④~⑥)는 필기에 옮기지 않았다.

4. 결론

자료와 필기의 종합 요약 (에이전트 작성): 오늘 자료는 안성재 본인이 말한 세 자료다(2023년 삼프로TV 인터뷰 영상, 2024년 하퍼스 바자 인터뷰 기사, 2016년 VICE 1인칭 글). 2023년 영상에서 그는 열세 살에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 갔고, 매일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 가게를 도왔다고 돌아봤다. 그 일상이 싫었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지만 돈이 하나도 없어서, 대학 대신 미군에 지원했다. 평택에서 지내다 9·11 뒤 이라크 전쟁에 지원해 바그다드에 1년 좀 넘게 있었다. 그 뒤 포르쉐 정비사가 되려고 애리조나 정비 학교에 등록까지 마쳤다. 그러다 파사데나에서 흰 옷 입은 사람들을 보고 들어가 물었고, 요리로도 직업을 삼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요리 학교에 등록했다(24살). 요리 학교 첫날 혼자만 식당 일자리가 있었는데, "어차피 요리사가 되려는 거면은 그게 더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2016년 글은 같은 첫날을 식당 뒷문으로 가서 일을 달라고 한 날로 적는다. 접시 닦기로 시작해 굴 손질을 하고, 학교가 끝나기 전에 매니저 자리까지 올랐다. 그 뒤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 초밥집(2016년 글에서는 스시를 좋아해서 고른 LA 최고급 초밥집 우라사와)을 찾아가 거절을 여러 번 듣고도 다시 갔다. "돈 안 줘도 된다"며 들어갔고(2016년 글은 주인 셰프가 첫 달 무급과 맨 처음부터 시작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씀), 요리만 빼고 사포질·설거지·화장실 청소·예약·서빙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무언가를 되풀이해 아주 잘하게 될 때의 만족이 있었고, 그 작은 일들이 요리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도움이 됐다고 돌아봤다. 2년쯤 뒤에는 주인이 없어도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모노를 입고 일본 사람처럼 일하는 자기 모습을 두고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기 싫은데" 하는 마음이 들었고, 아무리 잘해도 그렇게 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때 프렌치 런드리 셰프가 일자리를 제안했고 그는 바로 옮겼다. 2024년 기사에서는 "저는 요리에 소질이 없어요"라며, 같이 일하던 셰프에게 "넌 왜 맨날 간이 틀리냐?"는 꾸중을 듣고 10년 넘게 피운 담배를 끊고 계속 맛보기를 연습했다고 했다.

필기와 자료가 다른 곳이 있다.

  • 백그라운드의 '6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감'은 2번 기사(강남초등학교를 6학년까지 다니다 1993년 이민)와 맞고, 1번 영상은 열세 살 이민이라고 한다. '영어를 못 해 외톨이로 지낸 아이'는 오늘 고른 세 자료에 없다(조사 중 2025년 GQ 코리아 영상에서 나온 말이다). '부모님 식당 일을 도우며'는 1번과 맞다.
  • 계기 칸은 1번과 맞다. 목표 칸의 '공짜로'라는 말은 고른 자료에 없다. 1번은 "미군을 가면은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겠다"고 했다.
  • 행동 칸은 1번과 맞다. 필기에 없는 앞부분도 있다. 처음엔 한국(평택)에서 지냈고, '경험을 충분히 했다'고 판단한 뒤 이라크에 지원했다. '저축도 함'은 1번의 "저축도 좀 됐고"와 맞지만, 바로 뒤에 이라크에서 번 돈은 스포츠카를 사는 데 썼다고 했다.
  • 목표2 칸의 '하고 싶어서 지원'은 1번에서는 '상담 설명이 너무 흥미로워서 바로 등록했다'에 가깝다. 3번은 계기를 사촌의 물음으로 적는다.
  • 행동2 칸은 1번(첫날 일자리·접시 닦기·굴 손질·매니저)과 3번(첫날 뒷문·설거지)과 맞다. 마지막 '더 올라갈 곳이 없어 셰프가 딴 곳 가라 함'은 두 자료를 한 문장으로 이은 것이다. '올라갈 수 있는 데가 정해져 있다'는 3번의 본인 판단이고, '다른 데로 가라'는 1번에서 셰프가 권한 말이다. 셰프가 올라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권했다고는 두 자료 모두 말하지 않는다.
  • 목표3 칸의 '가장 어려운'은 필기의 말이다. 1번은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 소문, 3번은 '스시를 좋아해서'와 'LA에서 가장 고급인 곳'이다.
  • 행동3 칸의 '돈 안 줘도 되니 시켜 달라고 해서 들어감'과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됨'은 1번, '사포질·화장실 청소·예약·서빙을 되풀이'는 3번과 맞다. 3번은 무급을 주인 셰프가 건 조건으로 적는다.
  • 행동3 아래 '일본 사람처럼 일하는 내 모습이 싫음'은 1번과 뜻이 맞다. 1번에서 그는 한국에서 일식을 하는 셰프들 중 존경하는 분이 많고 그건 그분들의 선택이라고도 했다.
  • 목표4 칸은 1번과 맞다. 프렌치 런드리로 간 것은 그곳 셰프가 먼저 제안해서였다.
  • 행동4 칸은 2번과 맞다. 다만 언제, 어느 식당에서 들은 꾸중인지는 기사에 없다. 필기처럼 프렌치 런드리 다음 칸에 두면 그곳 일로 읽히는데,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 결론 칸은 자료의 사실이 아니라 나의 결론이다. 문장은 필기 그림의 에이전트 제안을 바탕으로 했다(3번 끝 참고). '궁금하면 가서 직접 했다'와 맞는 자료 속 행동은 파사데나에서 들어가 물은 일(1번)과 첫날 식당 뒷문으로 찾아간 일(3번)이다. '일터의 맨 아래 자리부터'는 접시 닦기(1·3번)와 초밥집 잔일(3번)이다. '잘하게 되어도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은 초밥집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된 뒤 떠난 일(1번)이다.

내가 직접 내린 결론 (필기의 'Conclusion 결론' 칸): 하고 싶은 것을(?) 몰라서 궁금하면 가서 직접했다. 일터의 맨 아래자리부터 일함. 그리고 계속 나아가면서 잘하게 되어도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과감히 전진해(?) 나아감. ('것을'은 '걸을'로도, '전진해'는 '전환해'로도 읽힌다. 이 문장은 필기 그림의 에이전트 제안 결론 문장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 3번 끝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