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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0, 10월 13일 (화) — 신동엽이 콩트가 힘들면 쉬었다 돌아오고, 숫자에 매여 막힌 뒤 '어떻게 할 수 있을까'로 일을 고른 흐름

오늘 자료는 신동엽에 관한 기사 여덟 편이다(2004년 4월 한국일보 인터뷰, 2007년 1월 주간경향 인물 소개, 2011년 5월 TV리포트 방송 기사, 2012년 6월 텐아시아 인터뷰, 2012년 7월 GQ 코리아 인터뷰 1편, 2015년 11월 텐아시아 방송 기사, 2023년 1월 OSEN 방송 기사, 2023년 9월 뉴시스 기사). 2015년 방송에서 그는 어릴 때 친구들이 다니던 유치원에 가고 싶어 엄마를 졸랐지만 못 갔다고 돌아봤다. 2004년 인터뷰에서는 큰형이 청각 장애인이라 아주 어릴 때부터 상처가 될 말이나 행동은 안 했다고 말했다. 신인 때 그는 기차 안에서 하는 개그를 짜 오라는 숙제를 받고, 데뷔 전에 알던 형의 말투를 따라 했다(2023년 본인 말). 2011년 방송에서는 처음엔 카메라맨만 웃고 감독의 반응은 별로였다고 했다. 2023년에는 반응이 좋아서 고정 코너가 됐다고 했다. 2012년 텐아시아 인터뷰에서 그는 이 '레일맨' 때가 가장 행복하면서 가장 힘든 때였다고 돌아봤다.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을 정리해야 해서, 10분짜리 콩트에도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콩트는 무조건 개그맨 본인이 해야 되는 작업"이라서, 버라이어티 진행을 하게 된 건 "일종의 도피"였다고 했다. 그래도 콩트가 제일 힘들어 오래 못 하고 쉬었다가, 그리워서 다시 한다고 했다. 2023년 영상에서는 '남자셋 여자셋'을 할 때 건강이 안 좋아 간 조직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의사가 술을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했고, 그때 하던 프로그램을 다 그만두고 6개월 동안 미국으로 요양을 떠났다고 했다. 주간경향 기자는 그가 1999년 12월 사건으로 11개월 동안 방송을 떠났다가, 2000년 10월 돌아오며 "개그맨은 나의 천직"이라며 용서를 구했다고 썼다. 2004년 한국일보 기자는 그가 인기 프로그램 두 개를 "내가 먼저 지겨워졌다"며 그만뒀다가 6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썼다. 2012년 GQ 인터뷰에서 그는 "6~7년 전 한창 바쁠 때"를 돌아보며 "그때 내 삶은 온통 숫자였다."고 했다. 새 프로그램마다 PD·작가·상대 프로그램·시간대를 다 따졌고, "0.1퍼센트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시청률 말고 다른 생각을 해 보자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사업 실패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며, 예전이라면 안 했을 <강심장>을 맡았다고 했다. 기준이 바뀐 까닭을 사업 실패와 직접 이어 말하지는 않았다. 어떤 방법 덕분에 잘됐다고 본인이 따로 잰 자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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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상에서 말한 내용

1. 6개월만에 컴백 신동엽 (한국일보, 2004)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0404260052954659

아래는 한국일보가 2004년 4월 26일에 낸 신동엽 인터뷰 기사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한국일보가 낸 신동엽 인터뷰 기사다. 제목은 '6개월만에 컴백 신동엽'이다(컴백: 다시 돌아옴). 그는 인기 프로그램 두 개를 그만뒀다가, 6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기사는 그가 그만둔 까닭으로 연다. 이어 지금 맡은 코너와 곧 시작할 새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그다음 그가 말을 조심하는 까닭(큰형), 좋아하는 프로그램 모양, 해 보고 싶은 시트콤을 다룬다. 끝에는 새 프로그램을 앞두고 제작진·김용만과 어떻게 회의했는지, 그 프로그램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를 다룬다.

왜 — 기자는 이 글을 왜 썼는지 따로 적지 않았다. 신동엽이 왜 이 인터뷰를 했는지도 자료에 따로 없다. 보이는 범위는 이렇다. 기사 첫 문단은 그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그때 그는 '사랑의 위탁모' 코너를 맡고 있었다. 5월 4일부터는 김용만과 새 프로그램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를 맡을 참이었다. 기자는 그가 돌아온 일을 '위험한 도박'이라고 불렀다. 정상의 자리에 머무는 대신 변화를 찾으려는 일이라고 썼다.

사례 (기사에 나온 순서대로)

  • 1문단 — 붙는 이름들, 그리고 그만둔 까닭 — 기자 글로 연다. 기자는 그를 "개그맨 신동엽(33)"이라고 소개했다. 그에게는 '걸어 다니는 시청률', '캐스팅 0순위', '특A급 MC' 같은 말이 붙는다고 썼다(캐스팅: 출연자로 뽑음). 출연료는 한 회에 800만 원에 이른다고 썼다. 한나라당 대변인 전여옥 씨는 방송 칼럼을 쓰던 때 그를 '반석 위의 스타'라고 불렀다고 썼다(반석: 넓고 단단한 바위).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큰 인기를 누리던 '해피투게더'와 '신동엽·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를 그만뒀었다. 기사는 그가 이렇게 말하며 그만뒀다고 썼다. "시청자들이 권태를 느끼기도 전에 내가 먼저 지겨워졌다"(권태: 싫증). 그 뒤 6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썼다.
  • 2~3문단 — 지금 맡은 코너와 새 프로그램 — 기자 글이다. 기자는 그가 정상의 자리에서 편히 머무는 대신, 변화를 찾으려고 '위험한 도박'에 나섰다고 썼다. 지금은 SBS '일요일이 좋다'(오후 6시)의 '사랑의 위탁모' 코너를 맡고 있다. 5월 4일부터는 김용만과 함께 SBS 버라이어티쇼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화요일 밤 11시 5분)를 맡는다. 기자는 김용만을 '브레인 서바이버'를 이끌며 최고의 MC로 평가받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 4문단 — 전여옥 씨 칭찬 이야기로 연 인터뷰 — 본인 말이다. 전여옥 씨가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썼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걱정했다고 했다. 자기는 욕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닌데 무슨 꿍꿍이일까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칭찬인 걸 알고 나니, 나쁜 느낌이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고 했다. 기자는 그가 억지스럽지도 기분 나쁘지도 않은 '상쾌한' 유머로 말을 시작했다고 썼다.
  • 5~6문단 — 선을 넘지 않는 말, 큰형 이야기 — 5문단은 기자 글이다. 기자는 그가 '영악스러울 정도로 선을 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썼다(영악: 약삭빠름). 많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주지만, 시청자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없다고 썼다. 6문단 첫머리는 본인 말이다. "원래 말을 얄밉게 하는 편이 아니에요. 저희 큰형이 청각 장애인이라 아주 어릴 때부터 무심결에라도 상처가 될 말이나 행동은 안 했어요."(청각 장애인: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 무심결: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사이) 그 뒤는 기자 글이다. 기자는 "그래서일까?"라고 물은 뒤, 그가 공익 오락 프로그램에 잘 맞는다고 썼다(공익: 여러 사람에게 이로움). 예로 어려운 사람에게 새 집을 지어 준 '러브하우스'를 들었다. 중·고등학생에게 아침 도시락을 날라 준 '하자하자'도 들었다. 아픈 사연을 보여 주면서도 숨은 "1㎜의 웃음"을 찾아내는 능력 때문이라고 썼다. 이어 본인 말이 나온다. 그는 "스튜디오 보다는 현장에 직접 나가서 땀 흘리며, 보통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 7문단 — '사랑의 위탁모'에서 운 일 — 기자는 지금 하는 '사랑의 위탁모' 코너가 이런 프로그램을 잇는다고 썼다(위탁모: 남의 아이를 맡아 돌보는 엄마). 다음은 본인 말이다. 전도연 씨가 태어난 지 여섯 달 된 아이 현규를 돌봤고, 그는 옆에서 지켜봤다. 현규를 미국으로 떠나보낼 때 같이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입양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버려진 아이들이 외국으로 보내지는 일이 계속될 거라고 했다.
  • 8문단 — 망가지는 역, 해 보고 싶은 시트콤 — 신동엽의 배움과는 관계가 적은 대목이다. 기자는 그가 착한 이미지에만 갇혀 있지 않다고 썼다. '헤이!헤이!헤이!'에서는 아내에게 맞는 남자부터 변태까지 마구 망가졌고, '해피투게더'에서는 이효리와 호흡을 맞췄다고 썼다. 본인은 자정 넘은 시간에 어른 시청자를 상대로, 친구끼리 흔히 하는 야한 이야기를 다루는 시트콤(같은 인물들이 매회 나오는 웃긴 연속극)을 꼭 해 보고 싶다고 했다. 기자는 그가 직접 만든 시트콤 '으랏차차 신가네'(가제: 임시 이름)를 SBS 5월 개편 때부터 내보낼 예정이었다고 썼다. 하지만 비리에 얽혔던 은경표 PD가 출연자 뽑기를 맡았다고 알려지면서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고 썼다.
  • 9문단 — '안달 바가지', 그래도 0순위는 방송 — 기자는 그가 스스로를 '안달 바가지'라고 부른다고 썼다(안달: 속을 태우며 조급해함). 방송 출연과 시트콤 만들기 말고도 벌여 놓은 일이 많다고 썼다. 서울 대학로의 '라이브 소극장'(작은 공연장)을 사들였다. 외주제작사(방송사 밖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 '누비스타'의 대주주(회사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로도 일한다. 다음은 본인 말이다. "그래도 저한테 0순위는 방송이죠." 손님을 불러 이야기 나누는 토크쇼 모양 말고 새 모양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 제작진, '용만이 형'(김용만)과 "하루가 멀다고" 회의를 했다고 했다(하루가 멀다고: 거의 날마다).
  • 10문단 — 회의 뒤 호프집, 연락처를 적은 일 — 기자는 회의가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도 머리를 맞댔다고 썼다. 다음은 본인 말이다. SBS 목동 새 사옥(회사 건물) 근처에서 좋은 호프집을 찾았다. 다음에도 여기서 하자며 그가 연락처를 적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별 것 다 신경 쓴다"며 웃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담당 PD부터 새끼 작가까지" 제작진이 모두 모여야 한다고 했다. 술 한잔하며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라고 했다(새끼 작가: 가장 막내 작가, 직성이 풀리다: 마음이 개운해지다).
  • 11문단 — 그렇게 나온 코너 두 개 — 기자 글이다. 기자는 "그렇게 극성을 떨어서" 나온 것이 코너 두 개라고 썼다(극성: 몹시 애씀). 하나는 손님과 노래를 만들어 시청자에게 평가받는 '대결 콘서트 노래 만들기'다. 다른 하나는 특수 의상을 입고 오목을 두며 이야기를 나누는 '콤비 대결 어깨동무'다.
  • 12문단 — 단물만 다 빨아먹고 끝내지는 않겠다 — 본인 말이다. 오락 프로그램 가운데는 좀 잘된다 싶으면 "단물 쓴물 쪽쪽 모두 빨아먹고 나서야" 없어지는 것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는 그럴 때까지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기자는 그의 자신감에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는 말로 글을 끝냈다.

확인 메모

  • 이 기사의 입력 날짜는 2004년 4월 26일이고, 글쓴이는 김대성 기자다. 새 프로그램 첫 방송은 기사보다 뒤인 5월 4일이다. 그래서 새 프로그램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이 기사에 없다.
  • 두 프로그램을 언제 그만뒀는지 날짜는 기사에 없다. 기사는 "6개월 만"이라고만 썼다. 두 프로그램의 시청률 숫자도 이 기사에는 없다.
  • 그만둔 까닭인 "시청자들이 권태를 느끼기도 전에 내가 먼저 지겨워졌다"는 기자 문장 안에 들어 있다. 기사는 그가 이 말을 하며 그만뒀다고 썼다. 하지만 그만둘 때 한 말인지, 이 인터뷰에서 한 말인지는 기사에 없다. 무엇이 지겨웠는지도 더 나오지 않는다.
  • '걸어 다니는 시청률' 같은 말과 한 회 '800만원'에 이르는 출연료는 기자가 쓴 말과 숫자다. 출연료를 어디서 확인했는지는 기사에 없다. 나이 '33'도 기사에 적힌 숫자다.
  • '영악스러울 정도로 선을 넘지 않는다'는 평가를 누가 했는지는 기사에 없다. 큰형 이야기 뒤에 공익 프로그램이 잘 맞는다고 이은 것("그래서일까?")은 기자의 생각이다. 본인은 큰형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상처 줄 말이나 행동을 안 했다는 데까지만 말했다.
  • 기자는 그가 스스로를 '안달 바가지'라고 부른다고 썼다. 그가 언제 이 말을 했는지는 기사에 없다.
  • "하루가 멀다고" 회의했다는 말에는 정확한 횟수나 시간이 없다. 회의에서 무엇을 어떻게 정했는지도 기사에 없다. 두 코너가 이 회의에서 나왔다고 이은 것은 기자 글이다.
  • 은경표 PD 일은 기자가 "알려지면서"라고 쓴 대목이다. 무슨 비리였는지는 기사에 없다.

2. [커버스토리] 방송 수위조절 능한 '시청률 제조기' (주간경향, 2007)

링크: https://weekly.khan.co.kr/article/13467

아래는 주간경향이 2007년 1월 2일에 낸 커버스토리 속 신동엽 소개 기사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주간경향 커버스토리에 실린 짧은 기사다. 박주연 기자가 신동엽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한 글이다. 글 머리 작은 제목은 "신동엽은 누구인가, 각종 예능프로 섭렵하며 진행자로 각광받아"이다(섭렵: 두루 거침, 각광: 크게 주목받음). 앞 두 문단은 PD와 방송작가들이 본 그의 성격과 진행 솜씨를 모았다. 뒤 네 문단은 1991년 데뷔부터 1996년 시트콤, 미국 연수, 1999년 사건, 2000년 복귀, 그 뒤의 성공과 결혼까지를 차례로 짚는다.

왜 — 기자는 이 글을 왜 썼는지 따로 적지 않았다. 제목 앞에 [커버스토리]가 붙어 있고 작은 제목이 "신동엽은 누구인가"여서, 그 호의 큰 기사 가운데 그를 소개하는 몫으로 보인다. 기사 안에서 까닭을 밝힌 곳은 세 군데다. 기자는 그가 행사 진행을 하지 못하는 까닭을 카메라 밖에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으로 썼다. 그가 최고 진행자로 꼽히는 까닭은 10년 동안 여러 장르를 두루 해 본 것이라고 썼다. 2000년 복귀 때 "개그맨은 나의 천직"이라고 한 말은 시청자에게 용서를 구하며 한 말이라고 썼다.

사례 (기사에 나온 순서대로)

  • 글 머리 — 작은 제목과 사진 설명 — 작은 제목은 위 「무엇인가」에 적은 한 줄이다. 사진 설명은 그가 나온 프로그램 6개를 해마다 적었다. SBS '두 남자쇼'(2001), KBS2 '해피투게더'(2003), SBS '헤이헤이헤이'(2003), SBS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2004), MBC '느낌표'의 '통일료리관'(2005), SBS '신동엽의 있다! 없다?'(2005)다. 사진 설명을 누가 썼는지는 따로 적혀 있지 않다.
  • 첫째 문단 — PD들이 본 성격: 영리하고 내성적 — 기자는 그를 10년 넘게 곁에서 본 방송사 PD들이 그를 "매우 영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평한다고 썼다(내성적: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수줍음이 많음). PD들의 이름은 없다. 카메라 앞에서는 장난꾸러기처럼 재치와 유머로 웃기지만,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낯을 많이 가린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개그맨들과 달리 행사 진행(따로 돈을 받고 맡는 행사 사회)을 하지 못한다고 기자는 썼다. 비교로 김제동은 행사 진행료로 보통 1000만원을 받는다고 괄호 안에 적었다. MBC 여운혁 CP(책임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성적 성격 탓에 행사 진행을 맡기로 했다가 결국 위약금을 물어준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위약금: 약속을 어겨서 무는 돈).
  • 둘째 문단 — 작가들이 본 진행 솜씨, 여러 장르를 거친 10년 — 방송작가들의 말은 따옴표 없이 기자가 간추렸다. 작가들은 그가 말따먹기(남의 말을 받아 재치 있게 말을 잇기), 호흡관리(말을 주고받는 빠르기 맞추기), 여백관리(말 사이 쉬는 틈 다루기)를 잘한다고 했다. 방송의 수위(말과 장난이 지나치지 않은 정도)를 잘 맞추고 깔끔하게 진행한다고 했다. 이어서 친한 연예인이 나와도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나온다. 기자는 그가 10년 동안 콩트(짧게 웃기는 연극)·토크쇼·버라이어티쇼(여러 사람이 나와 게임과 이야기를 하는 예능)를 두루 해 본 것이 지금 최고 진행자로 꼽히는 이유라고 썼다. 유재석처럼 안티팬(싫어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썼다.
  • 소제목 아래 첫째 문단 — 1991년 대학축제 사회에서 SBS 특채로 — 기자 글이다. 그는 1991년 대학축제에서 사회를 보다가 개그맨 이성미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SBS 특채(공개 시험 대신 따로 뽑힘)로 데뷔했다. 데뷔 초부터 '레일맨'이라는 코너의 유행어 "안녕하시렵니까?"로 주목받았다. 1994년에는 '기쁜 우리 토요일'에서 홍록기·이영자와 함께 MC를 맡았다. 여러 코너에 나오며 인기를 높였다고 기자는 썼다.
  • 소제목 아래 둘째 문단 — 시트콤, 미국 연수, 그리고 사건 — 기자 글이다. 1996년에는 시트콤(같은 인물들이 매회 나오는 코미디 드라마) '남자 셋 여자 셋'에 나왔다. 기자는 그가 능청스럽고 뻔뻔한 모습을 보여 연기력도 인정받았다고 썼다. 그 이듬해 그는 "미국유학 연수"로 잠시 방송을 쉬었다. 그리고 1998년 9월, 1년이 채 안 돼 돌아와 '남자 셋 여자 셋'에 다시 나왔다. 1999년 12월에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 기소(붙잡혀 갇힌 채 재판에 넘겨짐)됐다. 그래서 11개월 동안 방송을 떠나 있어야 했다고 기자는 썼다.
  • 소제목 아래 셋째 문단 — 2000년 복귀와 "개그맨은 나의 천직" — 그는 2000년 10월 가을 개편(방송사가 프로그램을 새로 짜는 때)에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러브하우스와 '두 남자쇼'로 돌아왔다. 기자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어 그가 다시 일어섰다고 썼다. 복귀를 두고 시청자와 네티즌 사이에 일었던 논란도 곧 잠잠해졌다고 썼다. 기사는 복귀 때 그가 한 말을 옮겼다. 그는 "개그맨은 나의 천직"이라며 "최선을 다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밖에 달리 별 도리가 없다"며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천직: 타고난 일). 이 두 조각은 기사가 본인 말로 밝혀 옮긴 말이다. 기자는 "그 약속을 시청률로 입증해 보인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문장은 기자 글이다.
  • 소제목 아래 넷째 문단 — '시청률 제조기', 그리고 결혼 — 기자 글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시청률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그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잇달아 성공했다고 썼다. 예로 '해피투게더', 'TV동물농장', '맨II맨', '헤이헤이헤이', '즐겨찾기'를 들었다. 기자는 그가 "올 5월"에 MBC 예능국 PD 선혜윤(28)과 1년 동안 사귄 끝에 결혼해 주목받았다고 썼다.

확인 메모

  • 기사 입력 날짜는 2007년 1월 2일이다. 글쓴이 줄은 "박주연 기자"다. 결혼은 "올 5월"이라고만 쓰여 있고 연도 숫자는 없다. 입력 날짜로 보면 2007년 5월은 아직 오지 않은 때라, 기사를 쓴 해인 2006년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는 '1년 연예 끝에'로 적혀 있다. 사귐을 뜻하는 '연애'를 잘못 쓴 글자로 보인다.
  • 이 기사에서 본인 말로 분명한 것은 2000년 복귀 때의 두 조각("개그맨은 나의 천직", "최선을 다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밖에 달리 별 도리가 없다")뿐이다. 어느 자리(기자회견·방송·인터뷰 등)에서 언제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기사에 없다. 처음 어느 매체가 실었는지도 없다. 기자는 "복귀 당시"라고만 썼다. "용서를 구했다"와 "시청률로 입증해 보인 셈"은 기자 글이다.
  • 미국에 간 일은 기자 글이다. "이듬해"는 1996년의 다음 해라는 뜻이지만, 기사에 1997이라는 숫자는 없다. 몇 월에 떠났는지, 미국 어디서 무엇을 배웠는지, 왜 갔는지는 기사에 없다. 기사는 "미국유학 연수"라고 써서 유학인지 연수인지 하나로 정하지 않았다. 돌아온 때는 1998년 9월이고, 기간은 "1년이 채 안 돼"라고만 썼다.
  • 2007년 무렵 그가 한 주에 프로그램을 몇 개 맡았는지, 소속 회사 이야기는 이 기사에 없다. 사진 설명의 프로그램 6개는 2001~2005년 여러 해의 프로그램을 모은 것이다. 한때 동시에 맡은 수가 아니다.
  • 숫자는 모두 기자가 쓴 숫자다. 'PD들이 10년 이상 지켜봤다'와 '10년간 방송활동'도 기자 숫자다. 기사대로 1991년에 데뷔했다면 기사 입력 때까지 15년쯤인데, 기자는 '10년'이라고 썼다. '11개월'도 기자 숫자이고, 어떻게 셌는지는 없다. '1000만원'은 김제동의 행사 진행료이지 신동엽의 숫자가 아니다. 선혜윤의 나이 '28'은 기사를 쓸 때의 나이다.
  • "매우 영리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여러 PD의 평가를 묶어 따옴표에 넣은 것이다. 누가 한 말인지 한 사람의 이름은 없다. 방송작가들의 말도 이름 없이 기자가 간추렸다. "친한 연예인이 출연했다고 해서 반말을 하는 일도 없다"가 작가들의 말인지 기자 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 여운혁 CP의 말은 "위약금을 물어준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로 끝난다. 직접 본 일이 아니라 들어서 안다는 말투다. 언제 어떤 행사였는지는 기사에 없다.
  • 말따먹기·호흡관리·여백관리의 뜻은 기사가 따로 풀지 않았다. 괄호 풀이는 낱말을 쉽게 옮기려고 붙인 것이다.
  • '두 남자쇼'는 본문에 방송사 이름 없이 나오고, 사진 설명에 SBS(2001)로 적혀 있다.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방송사와 '레일맨' 코너가 들어 있던 프로그램 이름은 이 기사에 없다. 데뷔 계기가 된 대학축제가 어느 학교였는지도 없다.
  • 1999년 사건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 기소"까지만 기사에 있다. 재판 결과는 이 기사에 없다.

3. 신동엽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 선배들 시기 받았다" (TV리포트, 2011)

링크: https://web.archive.org/web/2012id_/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114327

아래는 TV리포트가 2011년 5월 4일에 낸 방송 기사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TV리포트가 KBS 2TV 토크쇼 '승승장구' 방송을 보고 쓴 짧은 기사다. 신동엽은 이 방송에서 신인 시절 이야기를 했다. 기사는 그 가운데 '레일맨'이라는 코너가 생긴 과정을 주로 옮겼다. 흐름은 이렇다. 선배들의 콩트(짧게 웃기는 연극)가 잘 안 됐다. 세트를 빌린 돈이 아까워 신인들에게 기회가 왔다. 처음엔 카메라맨만 웃었다. 방송을 탄 뒤 인기를 얻어 고정 코너(매주 나오는 코너)가 됐다. 신인이 고정 코너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선배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유행어 말투는 데뷔 전에 알던 형의 말투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왜 — 그 자리에서 왜 이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사에 따로 없다. 기사 제목과 첫 문단은 신인 때 선배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은 일에 맞춰져 있다. 기자는 이 방송이 그가 13년 만에 혼자 게스트로 나온 토크쇼였다고 썼다.

사례 (기사에 나온 순서대로)

  • 맨 위 사진 — 방송 화면 자막 일곱 개 — 기사 맨 위에는 '승승장구' 화면을 이어 붙인 사진이 있다. 기사 끝의 사진 설명은 "사진 = KBS 2TV ‘승승장구’ 화면 캡처"다. 자막은 위에서부터 이렇다. "얼떨결에 첫 방송이 나가고", "반응이 괜찮았고", "어느새 고정 코너가 되어버린", "있을 수 없는 일!", "처음엔 시기와 질투도...!", "데뷔 전에 알던 형", "만나면 아주 말을 재밌게". 마지막 자막에는 '동엽'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사진이 거기서 끝나서 뒷말은 없다. 자막은 방송 제작진이 넣은 글자다.
  • 1문단 — 신인 때 받은 시기와 질투 — 기자 글이다. 기자는 신동엽이 3일 방송된 '승승장구'에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썼다. 신인 시절 선배 개그맨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는 이야기다.
  • 2문단 — 1992년 데뷔, '레일맨'으로 단번에 스타 — 기자 글이다. 기자는 그가 연기와 개그 사이에서 개그를 골라 1992년에 데뷔했다고 썼다.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의 한 코너인 '레일맨'에서 "안녕하십니까?"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단번에 스타가 됐다고 썼다.
  • 3문단 — 선배 콩트가 안 되자 신인에게 온 기회 — 본인 말이다. 그때 방송사가 중견 개그맨들(경력이 꽤 쌓인 개그맨)에게 콩트를 주문했지만,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고 했다. 세트를 빌리는 돈은 이미 낸 뒤였다. 그 돈이 아까워서 신인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카메라맨만 웃고, 감독의 반응은 별로였다고 했다. 기자는 이 말을 '레일맨'이 생긴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 4문단 — 방송을 타고 고정 코너가 되다 — 기자 글이다. 기자는 그가 개그 재능을 인정받아 곧 기회가 왔다고 썼다. 그제야 방송을 탄 '레일맨'은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썼다. 그리고 "고정코너로 자리매김하며 승승장구를 달렸다"고 썼다(자리매김: 자리를 잡음).
  • 5문단 — 신인의 고정 코너, 그리고 아는 형의 말투 — 본인 말이다. 그는 "그 당시에 신인이 고정코너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에는 시기와 질투를 받았었다"라고 했다. 유행어에 대해서는 "데뷔하기 전에 아는 형이 그런 말투를 썼었다"라고 했다.
  • 6문단 — 이기광의 농담 — 함께 나온 이기광의 말이다. 기자는 이기광이 그때 두 살이었다고 썼다. 이기광은 말을 처음 배울 때 '안녕하시렵니까?'로 시작할 뻔했다고 농담했다.
  • 7문단 — 13년 만의 토크쇼, 김용만·유재석, 형 — 기자 글이다. 기자는 그가 '승승장구'로 13년 만에 혼자 나오는 토크쇼 게스트가 됐다고 썼다. 그가 은인(도와준 고마운 사람)이라 부른 김용만·유재석과의 인연을 말했다고 썼다. 청각장애가 있는 형을 아끼는 마음도 드러냈다고 썼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사에 더 나오지 않는다.

확인 메모

  • 기사 날짜와 방송 날짜가 하루 다르다. 기사는 2011년 5월 4일 새벽에 올라왔고, '3일 방송된'이라고 썼다. 그래서 방송은 2011년 5월 3일이다. 이야기 자체는 2011년에 신인 시절을 돌아본 말이다.
  • '고정 코너가 됐다'는 말은 이 기사에도 있다. 다만 본인 말이 아니라 기자 글이다(4문단 "고정코너로 자리매김하며"). 본인 말(5문단)에는 "신인이 고정코너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가 있다. 고정 코너가 된 뒤의 일을 두고 한 말이지만, '고정 코너가 됐다'는 문장은 아니다. 맨 위 화면 자막에도 "어느새 고정 코너가 되어버린"이 있다. 이것은 방송 제작진이 넣은 글자다. 본인 입에서 나온 '고정 코너가 됐다'를 글자로 옮긴 것은 2023년 1월 21일 OSEN 기사다. 그 기사는 JTBC '손 없는 날'(지난 20일 방송)에서 그가 "반응이 좋아서 고정 코너가 됐다"고 말했다고 옮겼다.
  • 처음 반응에서 방송까지 사이에 무엇을 바꿨는지는 기사에 없다. 본인 말은 "처음에는 카메라맨만 웃고 감독의 반응은 별로였다"까지다. 곧 기회가 왔고 그제야 방송을 탔다는 것은 기자 글이다. 화면 자막은 "얼떨결에 첫 방송이 나가고"라고 적었다.
  • 말투 이야기의 글자가 자료마다 조금 다르다. 이 기사의 본인 말은 아는 형이 "그런 말투를 썼었다"까지다. 그 말투를 따라 했다는 말은 이 기사에 없다. 2023년 OSEN 기사에서는 그가 "재밌던 아는 형의 말투를 따라 했는데"라고 말했다. 아는 형이 누구인지는 두 기사 모두에 없다.
  • 기회가 온 까닭도 2011년과 2023년 이야기가 다르다. 이 기사에서는 선배 콩트의 반응이 나빴고, 세트 빌린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2023년 OSEN 기사에서 그는 신인들에게 기차 안에서 하는 개그를 짜 오라고 해서 각자 짜 왔다고 말했다. 자기를 싫어한 선배가 사람들을 데려와 구경했지만 "한 번도 NG를 안 내고 연기했다"는 이야기도 2023년 기사에만 있다. 이 기사에는 시기와 질투로 무엇을 겪었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 유행어가 같은 기사 안에서 두 가지로 적혀 있다. 2문단 기자 글은 "안녕하십니까?"이고, 6문단 이기광의 말은 '안녕하시렵니까?'다. 2023년 OSEN 기사도 '안녕하시렵니까'라고 적었다. 2문단 글자는 기사 그대로 두었다.
  • 1992년 데뷔, 13년 만의 단독 토크쇼, 이기광의 '당시 2세'는 모두 기자가 쓴 숫자다. 연기와 개그 사이에서 개그를 골랐다는 것도 기자 글이다. 언제, 왜 골랐는지는 기사에 없다.
  • 기사에 없는 것도 있다.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가 어느 방송사 프로그램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세트를 빌린 돈이 얼마였는지, 기회를 받은 신인이 몇 명이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콩트를 맡았던 중견 개그맨이 누구인지도 나오지 않는다.

4. 신동엽│"콩트와 버라이어티, 짜장면과 짬뽕 같은 것" (텐아시아, 2012)

링크: https://www.tenasia.co.kr/article/2020012328114

아래는 텐아시아가 2012년 6월 25일에 낸 신동엽 인터뷰 기사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2012년 6월에 실린 신동엽 인터뷰다. 기자는 tvN 'SNL 코리아 2'(아래 SNL 2) 방송 사흘 전에 한 인터뷰라고 썼다. 신동엽은 이 회의 호스트(그 회의 주인공으로 나와 여러 콩트를 이끄는 사람)였다. 소개 글은 그의 말로 연다. "사람들은 내가 20년 넘게 해왔던 캐릭터를 할 것이라 기대하겠지만 변태 쪽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기자는 변태 캐릭터를 피하려고 골랐다는 사이비 승려(가짜 스님)가 결국 돈을 더 좋아하고 야한 말을 중얼거리는 인물이었다고 썼다. 그리고 그에게 콩트(짧게 웃기는 연극)는 "제일 행복한 순간"이면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여러 사람이 나와 게임·이야기를 하는 예능)으로 도피할 만큼 "힘든 작업"이라고 썼다. 문답은 세 부분이다. 첫째는 SNL 2에 나오기로 한 일과 준비, 그리고 콩트가 제일 좋으면서 제일 힘들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콩트와 진행이 어떻게 다르고 서로 어떻게 돕는지다. 셋째는 예전 콩트 캐릭터, 감을 지키는 법, 진행하며 얻은 것이다.

왜 — 기자는 이 인터뷰를 왜 했는지 따로 적지 않았다. 다만 SNL 2 방송을 앞두고 한 인터뷰라서, 질문은 첫 개그맨 호스트의 부담과 콩트 이야기로 이어진다. 기자는 이 인터뷰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어버린 콩트를 향한 신동엽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고백에 가깝다"고 썼다(숙명: 피할 수 없는 운명). 본인은 SNL 2에 나온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SNL을 시즌 1부터 보며 속으로 하고 싶었다. 예전에 함께 일한 송창의 본부장이 계속 설득했다. 그리고 늘 어른 웃음에 목말랐는데, SNL 2에 나온 것만으로 그 목마름이 풀린다고 했다.

사례 (문답 순서대로)

  • '오늘 촬영분은 어떤 내용인가.' — 사이비 승려 역할 — 본인 말이다. 그는 한 코너(이름이 빠짐)에 불법 도박으로 잡혀간 승려로 나온다. 지난주 방송(이름이 빠짐)을 보니 다른 캐릭터들이 너무 재밌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며칠 전 장진 감독, 제작진을 만나 사이비 교주(가짜 종교 지도자)나 사기꾼 캐릭터를 제안했다. 제작진이 회의를 해 보겠다고 했고, 그 뒤 승려 캐릭터가 나왔다. 사람들은 그가 20년 넘게 해 온 캐릭터를 기대하겠지만, 그는 변태 쪽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 '왜?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고 또 본인이 가장 잘하는 분야 아닌가. (웃음)' — 늘 재미가 먼저 — 본인 말이다.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면 자연스럽게 야한 모습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잘 풀리기 힘든 상황에서 억지로 꾸며 하는 건 별로라고 했다. 최근 '섹드립'(야한 농담)으로 화제가 됐지만, 자기는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21년 동안 방송하며 변태 연기만 한 게 아니라 여러 콩트 연기를 보여 줬다고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늘 재미가 최우선이고" 그중 어른용 소재에 맞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표현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걸 의식하고 성인물로 가자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 '신동엽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기대감뿐만 아니라 첫 개그맨 호스트라는 점에서도 부담감이 컸을 것 같은데.' — 겉으로는 싫은 척, 속으로는 하고 싶었다 — '첫 개그맨 호스트'는 기자의 질문 속 말이다. 본인 답은 이렇다. 평소 그런 모습을 안 보이던 배우는 나오기만 해도 사람들이 놀란다. 하지만 자기는 다 해 왔던 것들이라 부담이 컸다고 했다. "< SNL >을 시즌 1부터 보면서 속으로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겉으로는 되게 하기 싫어했다." 특별히 설득하지 않아도 무조건 같이 해야 하는 사람이 몇 명 있다고 했다. 그중 한 사람이 MBC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함께한 송창의 본부장이다. 그는 송창의 본부장이 "울고 싶은 놈 뺨 때린 격"이라고 했다(하고 싶던 참에 핑계를 준 셈이라는 뜻의 속담). 계속 설득하자 그는 부담스러운 척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래 해야지, 해야지’ 다짐했다"고 했다. 심장은 막 벌렁거렸다며 웃었다.
  • '어렵게 출연을 결정한 만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겠다.' — 5시 회의를 4시 30분으로 당기려 함 — 본인 말이다. 야외 촬영도 며칠씩 하고 회의도 계속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주에 특히 시간이 없어서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조바심(마음이 급해 초조함)이 나고 걱정됐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라며 이렇게 말했다. 5시에 만나 회의하기로 했으면, 앞 일정을 빠듯하게 끝내고 4시 30분에 만나기로 한다. 제작진에게 전화해 "제가 4시 30분에 갈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물었다. 결국 만난 건 4시 50분이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만나 회의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 출연을 좀 더 나중에 하면 어떻겠냐는 말도 했었다고 했다.
  • '직접 아이디어를 낸 코너도 있나.' — 리허설과 현장 반응을 보고 고친다 — 본인 말이다. 제작진이 대본을 워낙 탄탄하게 만들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콩트 방향을 정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계속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식으로 회의했다고 했다. "원래 콩트라는 게 당일 아침 리허설 하면서 고치고 현장 반응보고 또 고치는 거니까" 자기 역할은 제작진을 믿고 더 맛깔스럽게 연기하는 것이라고 했다(리허설: 촬영 전에 미리 해 보는 연습).
  • '한 시간 동안 주인공으로서 콩트를 꾸려가는 건 SBS 이후 약 5년 만인데 기분이 어떤가.' — 가장 행복하고 가장 힘들었던 '레일맨' — '약 5년 만'은 기자의 질문 속 숫자다. SBS 뒤 프로그램 이름은 빠져 있다. 본인 답은 이렇다. "콩트를 제일 좋아하고, 콩트 연기를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S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서 '레일맨'을 할 때 '안녕하시렵니까'라는 유행어가 나왔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면서, 돌아보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계속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을 정리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10분짜리 콩트인데도 일주일 내내 고민이 많았다." 작가들이 있긴 했지만 "콩트는 무조건 개그맨 본인이 해야 되는 작업이거든."이라고 했다. 그리고 버라이어티 진행을 하게 된 건 "일종의 도피였다"고 했다(도피: 힘든 곳에서 피해 달아남). 사람들은 콩트도 하고 진행도 하니 다재다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내 심정은 콩트가 너무 힘들어서 도피한 거였다." 그래서 지금도 후배들에게, K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하는 친구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했다. 몇 달 잠깐은 할 수 있어도, 몇 년 동안 계속 콩트를 하는 건 정말 어렵다고 했다.
  • '진행을 하면서 다시 콩트 연기가 그립진 않았나.' — 힘들어서 쉬고, 그리워서 다시 한다 — 본인 말이다. 그래서 이름이 빠진 프로그램들에 나갔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콩트가 제일 힘들기 때문에 오래 못하고 쉬었다가 또 다시 그리워서 콩트를 하고 있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연극에 대한 회귀본능"일 수도 있다고 했다(회귀본능: 처음 자리로 돌아가려는 마음). 예전에 안재욱과 두 달쯤 연극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아직도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다. 고향에 온 것 같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 '최근에도 JTBC 에 출연하면서 콩트와 진행을 병행하고 있는 건, 두 영역이 주는 성취감이 다르기 때문인가.' — 즉석 요리와 고민한 요리 — JTBC 뒤 프로그램 이름은 빠져 있다. 본인 말이다. 멘트로 사람들을 웃길 때와 연기로 웃길 때는 "맛이 굉장히 다르다"고 했다. 그는 요리에 빗댔다. 즉석에서 뚝딱 만든 요리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줄 때가 진행이다. 양념을 반만 얹을까 살짝 얹을까 고민해서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 줄 때가 콩트다. 멘트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채로 상대 말을 받아치는 것이라고 했다. "근데 콩트는 이게 재밌을까, 저게 재밌을까 고민하고 바꾸고 공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콩트에는 적당히 유치한 것, 야한 것, 과장된 것을 곁들여야 한다고 했다. 다만 자연스럽게 녹여야 하고, 그게 콩트의 매력이라고 했다.
  • '어떤 쾌감이 본인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나.' — 짜장면과 짬뽕 — 본인 말이다. "그건 짜장면, 짬뽕 같은 거다. 다 맛있다." 끼니마다 정성껏 장을 보면 스스로도 힘들고 질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하나도 놓치기 싫다고 했다. 다르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했다.
  • '콩트 연기를 했던 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도움이 되던가.' — 진행 속의 작은 연기 — 본인 말이다. "굉장히 많이 됐다." 버라이어티나 토크쇼도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작은 연기들이 다 있다고 했다. "깜짝 놀라서 ‘아 정말요?’라고 할 때도 미세한 호흡과 템포가 중요하다."(호흡: 말과 반응을 주고받는 때, 템포: 빠르기) 상대 말에 겹쳐 반응하든, 잠깐 멈췄다가 묻든 마찬가지라고 했다. 템포·내용·표정·몸짓·스튜디오 전체에 흐르는 기운이 다 모여야 토크쇼 보는 재미가 생긴다고 했다.
  • '콩트와 버라이어티 모두 결국 나 혼자만 잘한다고 재미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 상대방과 주고받는 호흡이 중요한 건데.' — 혼자 다 할 수 없다 — 본인 말이다. 상대가 생각대로 맞춰 주거나, 무언가를 더해서 잘 풀릴 때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현장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디어가 안 날 때가 있다. 그때 상대가 그가 생각 못 한 것을 보여 준다. 그는 그런 것이 굉장히 신기하고 재밌다고 했다. "나 혼자 모든 걸 다 할 순 없다." 빈대떡을 만들 때도 뒤집는 사람, 꾸미는 사람, 반죽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빗댔다. 콩트도 합작품(여럿이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콩트도 종합예술에 가깝다."(종합예술: 여러 사람의 재주가 모여 만드는 예술)
  • 'KBS 는 콩트 경험이 많은 이영자, 컬투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아무래도 뭔가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 — 쿠션으로 맞는 짧은 콩트 — KBS 뒤 프로그램 이름은 빠져 있다. 본인 말이다. 그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이영자가 쿠션으로 그를 때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는 틈을 이용한 짧은 콩트라고 했다. 개그맨들끼리라서 표정이나 맞은 뒤의 반응도 익숙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 '그럼에도 지상파 방송이라서 마음껏 지르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 진짜 하고 싶었던 성인 시트콤 — 지상파는 KBS·MBC·SBS처럼 누구나 보는 방송이다. 본인 말이다. 늘 그런 쪽으로 목마름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 시트콤(이름이 빠짐)을 끝내고, 그때 연출을 맡았던 송창의 PD에게 성인 시트콤(이름이 빠짐)을 제안했다(시트콤: 같은 인물들이 매회 나오는 코미디 드라마). 매일 하는 시트콤 말고, 일주일에 한 번 밤늦게 해 보자고 했다. 미국 시트콤(이름이 빠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 작품(이름이 빠짐)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서 두 작품(이름이 빠짐)을 견주었다. 한쪽에서 어른용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아주 건전한 장면만 나온다고 했다. "아이들은 청춘 시트콤을 좋아할 수 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성인시트콤이었다." 그래서 SNL 2는 시청자가 어떻게 보든, 나온 것만으로 목마름이 풀린다고 했다. 꼭 야한 소재를 다루느냐가 아니라, 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목마름을 풀어 준다고 했다.
  • '에서 변태 캐릭터를 만들어 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 조금이나마 푼 목마름 — 질문 맨 앞의 프로그램 이름이 빠져 있다. 본인 말이다. 그렇다고 했다. 예쁜 가정부가 오면 힘이 나는 할아버지, 조미령 형사에게 조사받는 피해자 같은 캐릭터는 그때 굉장히 파격적이었다고 했다(파격적: 보통의 틀을 크게 벗어난). 표정과 몸짓은 지금 봐도 걱정할 만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그래도 아주 조금이나마 자기 목마름을 푸는 차원에서 연기했다고 했다. 다행히 시청자들이 귀엽게 봐 줬다고 했다.
  • '사실 시청자들의 갈증도 함께 해소된 거다. (웃음)' — 농담으로 받음 — 본인 말이다. 농담 삼아, 자기는 돈 벌 때만 야한 농담을 하지만 평소엔 모두 그러지 않느냐고 했다. 그쪽으로 자기보다 훨씬 고수인 사람이 많다며 웃었다.
  • '나 같은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나.' — 혼자 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다 — 질문 속 프로그램 이름이 빠져 있다. 본인 말이다. 자기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뛰어난 PD와 작가들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자기를 골라 주면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한 번도 나 혼자 뭘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선택받기 위해서는 감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걸 유지하는 노하우가 있나.' — 따로 하는 것은 없다, 눈치가 있어야 한다 — 본인 말이다. 그럴듯하게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재수 없게 들릴 수 있지만 "그건 좀 타고나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일상에서도 물색(눈치)이 없으면 안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 세계는 특히 물색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보통 생활에서는 그런 말을 들으면 다음부터 안 그러겠다고 하면 된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라고 했다. 편집으로 시청자에게는 최대한 가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의 방청객과 제작진 앞에서, 그리고 나중에 생방송을 하면 본모습이 그대로 나온다고 했다. "굉장히 힘들지."
  • '콩트에서 변태 연기를 통해 갈증을 해소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얻은 건 뭔가.' —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 본인 말이다. 연예인으로 사는 게 정말 행복할 때도, 정말 힘들 때도 있다고 했다. 제일 좋은 점 하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녹화하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프로그램으로 SBS 'TV 동물농장'과 다른 한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들었다. 'TV 동물농장' 영상을 보며 자기 상황에 대 보거나, 동물을 사람처럼 여겨 보게 된다고 했다.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서도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듣고 배운다고 했다. 예전에 MBC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서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를 할 때도 그랬다고 했다. S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하면서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혔다고 했다. 다른 직업에서는 갖기 힘든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씩 성숙해진다."

확인 메모

  • 이 기사 주소의 번호는 2020으로 시작하지만, 기사에 적힌 입력 날짜는 2012년 6월 25일이다. 기자는 인터뷰를 SNL 2 방송 사흘 전에 했다고 썼다. 인터뷰한 날과 방송 날은 기사에 없다. 기사 맨 아래 글쓴이 줄은 "글. 이가온", "사진. 이진혁", "편집. 장경진"이다.
  • 기사 제목·소제목·소개 글의 큰따옴표 말은 답의 글자와 꼭 같지 않다. 소개 글 첫 인용은 답을 줄인 것이다. 답에는 "늘 그렇듯이, 한결같이"라는 말이 더 있고, 끝도 "얘기했다"로 끝난다. 소개 글의 "제일 행복한 순간"과 "힘든 작업"은 답에 그 글자 그대로는 없다. 답에는 "제일 행복하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 "콩트가 너무 힘들어서", "공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 있다. 기사 제목은 '짜장면, 짬뽕' 답을 줄인 말이다. 첫째·셋째 소제목도 답을 줄인 말이다. 둘째 소제목 "콩트도 종합예술에 가깝다"만 답의 글자 그대로다.
  • 숫자의 조건은 이렇다. '20년 넘게', '21년 동안'은 본인이 말한 자기 방송 경력이다. '약 5년 만'과 '첫 개그맨 호스트'는 기자 질문 속 말이다. '10분짜리 콩트'와 '일주일 내내'는 '레일맨' 때를 돌아본 본인 말이다. '레일맨'을 한 해는 기사에 없다. 버라이어티 진행으로 언제 옮겼는지도 기사에 없다.
  • 5시·4시 30분·4시 50분은 SNL 2를 준비한 그 주의 일로, 본인이 "예를 들어"라며 든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는지는 기사에 없다. 출연을 미루자고 한 말이 받아들여졌는지도 기사에 없다.
  • '레일맨' 때 회의·아이디어·대본 정리를 직접 했다는 것은 본인 말이다. 일주일 동안 무엇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 회의를 몇 번 했는지는 기사에 없다. 리허설과 현장 반응을 보고 고친다는 말도, 몇 번이나 얼마나 고쳤는지는 기사에 없다.
  • 감을 지키는 노하우를 묻자 본인은 따로 하는 것은 없다고 답했다. 진행하며 '배운다'고 한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결혼에 대한 생각이다. 웃기는 기술을 배운다는 말은 이 답에 없다.
  • 안재욱과 '두 달 정도' 한 연극이 언제, 무슨 작품인지는 기사에 없다. 2009년 8월 7일 텐아시아 인물 기사(강명석 기자 글)는 그가 학교 때 셰익스피어와 아서 밀러의 작품을 연기했고, 졸업 뒤 안재욱과 연극 '한 평 반짜리 혁명'에 나왔다고 썼다. 이 인터뷰의 연극이 그 작품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 송창의는 이 기사에 두 번 나온다. SNL 2 출연을 설득한 '본부장님'과, 성인 시트콤을 제안받은 그때의 연출 'PD'다. 두 곳 모두 함께한 프로그램 이름이 빠져 있다. 2009년 같은 인물 기사(기자 글)는 송창의를 그가 나온 MBC '남자 셋 여자 셋'의 연출자라고 썼다. 이 기사에서 빠진 이름이 그 프로그램인지는 이 기사만으로는 알 수 없다.
  • 2009년 같은 인물 기사(기자 글)는 그가 "건강한 성적인 얘기가 너무 죽어있다"며 성인 코미디를 하고 싶어 했다고 썼다. 이런 코미디를 반대하는 방송사를 설득하려고 꽤 애썼다고도 썼다. 그 기사는 변태 연기를 SBS '헤이헤이헤이'에서 시도했다고 썼다. 이 인터뷰에서 변태 캐릭터를 만든 프로그램 이름은 빠져 있어서, 같은 프로그램인지는 이 기사로 알 수 없다.
  • 제안한 성인 시트콤이 실제로 방송됐는지, 그가 만들었다는 작품이 무엇인지는 이름이 빠져 있어 이 기사로 알 수 없다. 견준 두 작품 가운데 어느 쪽이 어른용 소동이고 어느 쪽이 건전한 장면인지도 이름이 없어 가릴 수 없다.
  • 첫 장면의 코너 이름도 물음표만 남고 빠져 있다. 승려 연기가 실제 방송에서 어땠는지는 기자의 소개 글에만 있다.

5. 더 더 더 신동엽 1 (GQ Korea, 2012)

링크: https://www.gqkorea.co.kr/?p=15486

아래는 GQ 코리아(남성 잡지 GQ의 한국판)가 2012년 7월 24일에 웹사이트에 올린 신동엽 문답 인터뷰 1편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남성 잡지 GQ 코리아가 2012년에 한 신동엽 인터뷰를 웹사이트에 나눠 올린 것 가운데 1편이다. 에디터는 짧은 소개 글로 연다. "신동엽은 원래 그랬다. 원래 아무렇지도 않게 야했고 능청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신동엽 좀 보라며 난리"라고 썼다. 에디터는 그에게 "다소 엉뚱한 물건"을 건넸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받고는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1편에 없다. 문답은 10개다. 요즘 반응 → 사업 실패 → 행복을 몰랐던 때 → '6~7년 전' 시청률 숫자로 살던 때 →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강박 → 모자란 게 들킬까 봐 초조했던 마음 → 동료들의 시상식 → 지금 달라진 기준(<강심장>, <안녕하세요>) 순서로 간다. 앞쪽 문답은 대부분 지난 일을 돌아보는 이야기이고, 마지막 문답이 지금 이야기다.

왜 — 에디터가 이 인터뷰를 한 까닭은 소개 글에 짧게 있다. 세상이 "신동엽 좀 보라며 난리"라서다. 무엇 때문에 난리인지 프로그램 이름은 1편에 없다. 세 번째 질문에서 에디터는 원래 '남자 신동엽' 얘기를 하려 했다고 밝혔다. 실패하고 물러나기도 하고, 멋져지기도 하는 이야기였다. 그 질문에 신동엽은 사업 실패 이야기로 답했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는, 에디터가 그가 "새로운 예능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식의 기사"도 있었다고 꺼내자 나온 답이다. 마지막 달라진 기준 이야기는, 에디터가 요즘 그가 "좀 달라 보였다"고 묻자 나온 답이다.

사례 (문답 순서대로)

  • '‘19 금’ 이 아니라 ‘29 금’ 인터뷰를 하려는 데 어떤가?' — 웃으며 받음 — 질문은 에디터의 농담이다('19금'은 19세가 안 된 사람은 보면 안 된다는 표시). 본인은 "하하, 뭘 또 29금을…."이라고만 답했다.
  • '난리났다는 표현이 웃기지만, 반응이 뜨거웠다. 봤나?' — 나는 늘 같았는데 — 본인 말이다. 반응을 봤고, 좀 신기하기도 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해 온 모든 것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산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말에 좀 놀랐다. 자기는 계속 한결같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뭔가를 한 것처럼 보이나 보다고 했다. 이미 알던 사람들이 반가워하는 면도 안다고 했다.
  • '사실 오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남자 신동엽’ 얘기를 하려고 했다. 실패하고 물러나기도 하고 멋져지기도 하고 또, 자고 싶다는 말도 확 하는.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색드립’ 점멸등이 켜 있었다.' — 사업 실패, 가장 값진 시간 — 질문은 에디터 말이다('색드립'은 야한 농담을 뜻하는 인터넷 말, 점멸등은 깜빡이는 신호등). 본인은 사업 실패 이야기로 답했다. 자기가 회사에 나가 경영을 하고, 앞장서서 뭔가를 한 게 아니었다고 했다. "공동 대표로 이름을 올리고, 연대 보증을 서고…."(연대 보증: 남의 빚을 함께 책임지겠다고 약속하는 것) 고소·고발까지 있었지만 다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구차하니까." 알려진 사람이니 어떻게든 좋게 풀어야 했다.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결국 자기를 이용해 "욕심의 극한을 보여준 사람"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며 권선징악(착한 일엔 복, 나쁜 일엔 벌이 돌아간다는 말)을 봤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라고 했다.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 '사업 안 하고 개그만 하겠다는 깨달음?' — 행복이 뭔지 몰랐던 때 — 본인 말이다. 그는 예·아니오로 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행복이 뭔지도 몰랐다." 어떤 충족감(가득 찬 느낌)을 행복이라고 느꼈을 뿐이라고 했다. 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때는 조급했고 피폐했다."(피폐: 몸과 마음이 지쳐 망가짐)
  • '언제? 신동엽이라고 쓰고 시청률이라고 읽던 그때?' — 온통 숫자였던 6~7년 전 — 본인 말이다. 웃으며 "6~7년 전 한창 바쁠 때"라고 했다. "그때 내 삶은 온통 숫자였다." 시청률에 따라 한 주는 괴롭고 한 주는 기뻤다고 했다. 자기를 진짜 쥐어짜고, 몹시 밀어붙이던 때라고 했다. 새 프로그램을 맡으면 따지는 것이 있었다. 프로듀서(PD)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이고 어떻게 일하는지. 작가는 어떤지. 상대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출연진은 누구인지. 무슨 요일 몇 시 프로그램인지. 우리가 1분 먼저 시작하는지, 5분 늦게 끝나는지. "그런 게 전부였다." "0.1퍼센트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시청률 말고 다른 생각을 좀 해 보자는 기분이 들었다. 연예인으로 누릴 것은 다 누렸고, 사랑도 받을 만큼 다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말해 "딴 데 눈 판 상황"이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나답지 않은 결정이었다."
  • '당신이 새로운 예능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강박 — 본인 말이다. 먼저 "그랬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했다(강박: 떨쳐 내기 힘든 생각). 숫자로는 꼭대기였어도 그만뒀다고 했다. "내가 이걸 또 하는구나" 하는 기분이 들거나, "어 재미없으려고 하네" 싶으면 바로 그만뒀다. <러브하우스>, <남자셋 여자셋>, <해피투게더>, <헤이헤이헤이>가 "다 그랬다." 그런 생각이 가장 셀 때 방송이 아닌 다른 일에 한눈을 팔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15년 이상 방송하면서 더 이상 나올 게 있을까? 거품은 아닐까? 했다."(거품: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
  • '어떻게든 이 사랑을 계속 더 받아야지? 나는 그랬을 것 같다.' — 모자란 게 들킬까 봐 — 질문은 에디터가 자기라면 사랑을 더 받으려 했을 것 같다고 한 말이다. 본인은 "들킬까 봐 그랬던 것 같다."고 답했다. "내 자체의 함량이 그렇게 높지 않은데 모자라는 부분이 드러날까 봐 초조했다."(함량: 안에 들어 있는 양)
  • '최고였다. 몰랐나?' — 숫자로는 알았지만 — 본인 말이다. "수치에 목숨 거는 사람이었으니 수치로는 알았다. 그러나 수치만으로는 안 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지금 훨씬 겸허하게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지만."이라고 덧붙였다(겸허: 잘난 체하지 않고 자기를 낮춤).
  • '연말 시상식을 보면서, 특히 사회를 보는 당신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꼭 지난 학기 반장이 이번 학기 반장 투표 진행하는 기분이랄까? 질투 나지 않았나?' — 질투가 아니라 부러움 — 본인 말이다. "전혀!"라고 답했다. 완전히 다르니까, 질투나 시샘이 아니라 부러움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에너제틱한 방송을 나는 하지 못한다."(에너제틱: 힘이 넘치는) 김용만·유재석·강호동이 상을 탈 때마다 좋았다고 했다.
  • '그 시간을 보낸 당신은 좀 달라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중량감으로 함께 나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하고 간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 '어떻게 보일까'보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질문은 에디터 말이다(중량감: 무게감). 본인은 "숫자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으니까."라고 답했다. 시청률은 지금도 보통 회사의 매출처럼 중요하게 느껴지고, 고민과 환호가 오가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면서 상관없어졌다." 강호동의 그림자가 뚜렷한 <강심장>을 맡는 일은 예전이라면 안 했을 거라고 했다. <강심장>은 "주어진 수명을 다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시 살려보고 싶었다." 일반인들과 수다 떨듯 즐기는 <안녕하세요>는 요즘 정말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마지막 말은 "내가 어떻게 보이는 것보다, 그냥 내가 중요해졌다."였다.

확인 메모

  • 같은 제목의 이어지는 편이 있다. 2편은 https://www.gqkorea.co.kr/?p=15489 (2012년 7월 30일에 올라옴), 3편은 https://www.gqkorea.co.kr/?p=15492 (2012년 8월 9일에 올라옴)이다. 이 요약은 1편만 다룬다.
  • '67년 전'은 2012년에 한 말이다. 2012년에서 빼면 20052006년 무렵이지만, 기사에 이 해가 적혀 있지는 않다. 잡지에 실린 달도 페이지에 없어서, 정확히 언제 기준인지는 조금 흔들릴 수 있다.
  • '0.1퍼센트'는 시청률 이야기 안에서 나온 숫자다. 어느 프로그램의 시청률인지는 없다. '15년 이상'은 본인이 말한 방송 햇수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센 것인지는 없다.
  • 무슨 사업이었는지, 언제였는지, "욕심의 극한을 보여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1편에 없다.
  • "딴 데 눈 판 상황"과 "나답지 않은 결정"이 사업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두 문답 앞에 사업 실패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답에서 '사업'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다. 박수칠 때 답의 "방송이 아닌 다른 일"도 무엇인지 이름이 없다.
  • 네 프로그램(<러브하우스>, <남자셋 여자셋>, <해피투게더>, <헤이헤이헤이>)을 언제 그만뒀는지, 그때 시청률이 몇이었는지는 기사에 없다. 숫자로 꼭대기였다는 것은 본인 말뿐이다.
  • 마지막 질문의 "그 시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질문에 따로 없다. 본인도 숫자를 덜 보게 된 것이 사업 실패 때문이라고 직접 이어 말하지 않았다. 또 숫자를 아예 버렸다는 말도 아니다. 시청률은 "여전히" 회사 매출처럼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이 어느 방송 때문인지, 연말 시상식이 어느 해 어느 방송사 시상식인지는 1편에 없다. <강심장>·<안녕하세요>의 방송사 이름도 없다.
  • 다른 자료와 다른 점: 2023년 12월 20일 텐아시아 기사(https://www.tenasia.co.kr/article/2023122078704)는 유튜브 채널 'TEO'의 '살롱드립2'에서 한 본인 말을 옮겼다. "예전엔 프로그램 제안을 받으면 동시간대 상대 프로그램이 뭐 하는지, 피디, 작가가 누군지 다 살피고 결정했다. 시청률의 노예였다. 지금은 아예 안 본다." 2012년 이 인터뷰에서는 시청률이 지금도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시기에 따라 말이 다르다.
  • 2009년 8월 7일 텐아시아 기사(https://www.tenasia.co.kr/article/2020012146654)는 기자 글로 이렇게 적었다. '러브하우스'가 끝난 뒤 "같은 시간대에서 경쟁하기 싫다"는 이유로 한동안 일요 버라이어티 쇼에 나오지 않았다. 절정기에 미국 유학을 떠났고, "바짝 일하고 쉴 때는 쉬자"가 모토였다. 이 두 이야기는 이 인터뷰에 없다. 그 기사에도 신동엽이 언제 어디서 한 말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6. '수요미식회' 신동엽, 눈물 젖은 빵에 대한 추억…김소희 "눈물 날 듯" (텐아시아, 2015)

링크: https://www.tenasia.co.kr/article/2015111723884

아래는 텐아시아가 2015년 11월 17일에 낸 방송 기사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케이블 방송 tvN의 음식 예능 '수요미식회' 방송을 보고 쓴 짧은 기사다. 이날 방송의 주제는 빵이었다. 김소희 셰프, 정홍연 셰프, 가수 박지윤이 손님으로 나왔다. 신동엽은 빵에 얽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월급날에만 먹던 카스텔라와 흰 우유 이야기다. 그리고 친구들이 다니던 유치원에 가고 싶어 엄마를 졸랐다가 못 간 날의 이야기다. 기사는 이 이야기와 김소희의 짧은 반응만 싣고 끝난다.

왜 — 그날 방송 주제가 빵이었다. 기자는 "이날 신동엽은 빵에 대한 추억을 전했다"고만 썼다. 그가 왜 이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자료에 따로 없다.

사례 (기사에 나온 순서대로)

  • 1~2문단 — 빵 편 방송 소개 — 기자 글이다. 기자는 신동엽이 빵에 대한 "슬픈 추억"을 전했다고 썼다. 11일 방송된 '수요미식회'가 빵에 대한 모든 것을 다뤘고, 김소희·정홍연 셰프와 가수 박지윤이 손님(게스트)으로 나왔다고 썼다.
  • 3문단 — 월급날의 카스텔라, 그리고 유치원 — 본인 말이다. 어릴 때 아버지 월급날은 매달 17일이었다. 그는 카스텔라와 흰 우유를 아주 좋아했지만, 그날에만 먹었다. 어느 날 골목에서 놀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유치원에 가 있었다. 그도 유치원에 너무 가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그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갔다. 엄마는 담당 전도사(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그 모습을 뒤에서 봤다. "뒤에서 보니까 갑자기 엄마가 고개를 탁 떨어뜨리셨다." 그는 "그때 '아 못 가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 4문단 — 17일도 아닌 날의 카스텔라 — 본인 말이다. 엄마와 유치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월급날인 17일도 아닌데 엄마가 이렇게 물었다. "동엽아 카스테라와 흰 우유 사줄까?" 마음 같아서는 필요 없고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해야 했다. 하지만 너무 먹고 싶어서 알았다고 했다. 그는 그걸 먹으며 유치원에 못 가는 걸 알아서 눈물이 막 났다고 했다. 그래도 빵은 너무 맛있었다고 했다. 기자는 이것을 "눈물 젖은 빵에 대한 추억"이라고 썼다. 이야기를 들은 김소희 셰프는 "눈물 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확인 메모

  • 날짜: 이 기사의 입력 날짜는 2015년 11월 17일(화요일)이다. 기사 주소 번호도 20151117로 시작한다. 기사 본문은 "11일 방송된"이라고만 쓰고 몇 월인지는 적지 않았다. 같은 방송을 다룬 OSEN 기사는 2015년 11월 12일에 나왔다. 그 기사는 '수요미식회' 42회가 지난 11일 방송됐고 주제가 빵이었다고 썼다. 그래서 방송은 2015년 11월 11일(수요일) 42회다. 이 기사는 방송 6일 뒤에 올라왔다.
  • 기사 제목의 "눈물 날 듯"은 제목에 맞춰 줄인 말이다. 본문에는 김소희의 말이 "눈물 날 것 같다"로 적혀 있다.
  • 왜 유치원에 못 갔는지는 이 기사에 없다. 이 기사는 돈이나 집안 형편을 말하지 않는다. 같은 방송을 다룬 OSEN 기사는 "돈 때문에 결국 등록을 하지 못했고"라고 썼다. 이 말은 OSEN 기자가 쓴 글이고, 큰따옴표로 묶은 신동엽의 말이 아니다.
  • 같은 방송을 다룬 두 기사가 신동엽의 말을 다르게 옮겼다. OSEN 기사는 그의 말을 "카스텔라는 너무 먹고 싶고, 유치원 못 가는 건 싫고. 그래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카스텔라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로 옮겼다. 또 그가 "지금은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여 웃음을 줬다고 썼다. 이 덧붙인 말은 이 기사에 없다. OSEN 기사에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친구들이 배운 노래를 부르며 놀아, 그가 혼자 빠진 느낌(소외감)을 받았다는 기자 글도 있다. 이것도 이 기사에 없다. 두 기사의 큰따옴표는 기자가 방송을 듣고 옮겨 적은 말이다. 방송 영상과 맞춰 보지 않아서, 어느 쪽 글자가 방송과 같은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 '매달 17일'은 신동엽이 말한 아버지 월급날이다. 그때 몇 살이었는지, 어떤 유치원이었는지는 기사에 없다.

7. 신동엽, "'안녕하시렵니까' 신인 시절, 날 싫어했던 선배 있어…괴롭혔다" ('손 없는 날') [종합] (OSEN, 2023)

링크: https://www.osen.co.kr/article/G1112028609

아래는 OSEN이 2023년 1월 20일에 낸 방송 기사(JTBC '손 없는 날'에서 나온 말을 옮긴 기자 글)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OSEN이 JTBC 예능 '손 없는 날' 방송 내용을 옮긴 기사다. 제목 끝에 [종합]이 붙어 있다. 신동엽과 한가인이 의뢰인(일을 부탁한 사람)을 만나러 대전으로 가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흐름은 이렇다. 명절 앞 기차 이야기 → 옛날 귀성길(명절에 고향 가는 길) 고생 → '안녕하시렵니까' 개그가 생긴 사연 → NG를 낼 수 없던 녹화와 자기를 싫어한 선배 → 괴롭히는 사람에게 느끼는 마음.

왜 — 그 자리에서 왜 이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기사에 따로 없다. 기사에 보이는 것은 순서뿐이다. 명절 앞 기차 이야기와 옛 귀성길 영상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기차 안 개그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례 (기사에 나온 순서대로)

  • 1~2문단 — 기사의 첫머리 — 기자 글이다. 기자는 신동엽이 예전에 선배에게 괴롭힘 당한 사연을 전했다고 썼다. 20일 방송된 '손 없는 날'에서 두 사람이 대전으로 향했다고 썼다. 그 가운데 신동엽이 '안녕하시렵니까' 개그에 숨은 사연을 털어놓았다고 썼다.
  • 3문단 — 명절 앞 기차 — 신동엽은 명절 전에 기차를 타니 고향 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가인도 할머니 집에 가고 가족을 만나는 느낌이라고 했다.
  • 4~5문단 — 옛날 귀성길 — 본인 말이다. 예전에는 부산·통영·땅끝마을 쪽 가는 길이 20시간씩 걸렸다고 했다(언제 일인지는 기사에 없다). "귀성길이 아니라 고생길이었다"고 했다. 길 중간에 사람들이 밥도 해 먹었다고 했다. 눈이 와서 스키를 타고 고향에 간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기자는 두 사람이 옛 귀성길 영상을 보며 웃었다고 썼다.
  • 6문단 — 신인 숙제 '기차 안 개그', 아는 형의 말투 — 기자는 신동엽이 기차 안 개그 '안녕하시럽니까'가 생긴 배경을 이야기했다고 썼다. 여기부터 본인 말이다. 신인들에게 기차 안에서 하는 개그를 짜 오라는 숙제가 나왔다. "각자 다 짜왔다." 숙제를 누가 냈는지는 기사에 없다. 그는 아는 형의 말투를 따라 했다. 그랬더니 "반응이 좋아서 고정 코너가 됐다"(고정 코너: 매번 이어서 나가는 꼭지). 그는 "신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 7문단 — NG를 낼 수 없던 녹화, 구경꾼을 부른 선배 — 본인 말이다. "그때 기차 배경이 있어서 NG가 나면 이을 수가 없었다"(NG: 찍다가 실수해서 다시 찍어야 하는 장면). 기자는 이 말을 '회상했다'(돌아봤다)고 썼다. 이어서 그는 자기를 별로 안 좋아한 선배가 있었다고 했다. 그 선배는 그가 연기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구경 가자고 했다. 그는 "나를 막 그렇게 괴롭혔는데 나는 NG없이 연기했다"고 말했다.
  • 8문단 — 괴롭히는 사람에게 느끼는 연민 — 본인 말이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낀다. 자신의 그릇의 모양을 알려주니까 그냥 안타까웠다"(연민: 딱하게 여기는 마음, 그릇: 사람의 마음 크기). 기자는 이 말을 '대인배의 모습'(마음이 넓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썼다.

확인 메모

  • 방송 날짜: 이 기사 본문은 "20일에 방송된"이라고 썼고, 기사는 2023년 1월 20일 밤 9시 13분에 나왔다. 같은 방송을 옮긴 OSEN의 다른 기사도 "지난 20일 방송된"이라고 썼다. 그래서 방송 날짜는 2023년 1월 20일로 보인다.
  • 같은 방송을 옮긴 OSEN 기사가 하나 더 있다: 강서정 기자, 「신동엽 “날 괴롭힌 개그맨 선배 안타까워..연민 느낄 정도”[Oh!쎈 리뷰]」(2023년 1월 21일, https://www.osen.co.kr/article/G1112028702).
  • 개그 이름 표기가 기사 안에서 섞여 있다. 제목과 2문단은 '안녕하시렵니까', 6문단은 '안녕하시럽니까'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이 기사로 알 수 없다.
  • 이 기사에 없는 것: 신인 때가 몇 년이었는지, 어느 방송사·어느 프로그램의 코너였는지, 숙제를 누가 냈는지, 따라 한 '아는 형'이 누구인지가 없다. 고정 코너로 누가 정했는지, '반응'을 무엇으로 봤는지, 그 선배가 누구인지도 없다.
  • 기사 제목의 "괴롭혔다"와 1문단의 '괴롭힘'은 7문단에서 그가 한 말을 줄여 쓴 것이다. 기사에 나온 괴롭힘의 내용은 그가 연기할 때마다 선배가 사람들에게 구경 가자고 한 것뿐이다.
  • '20시간'은 신동엽이 예전 부산·통영·땅끝마을 쪽 귀성길에 걸렸다고 말한 시간이다. 몇 년 무렵의 일인지는 기사에 없다.

8. 신동엽 "과거 건강 악화에 모든 방송 하차…6개월간 미국 체류" (뉴시스, 2023)

링크: https://www.newsis.com/view/NISX20230907_0002442516

아래는 뉴시스가 2023년 9월 8일에 낸 연예 기사(유튜브 영상에서 한 말을 옮긴 글)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에 신동엽이 손님으로 나온 영상을 옮긴 기사다.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버팔로윙(매운 소스를 바른 닭 날개 튀김) 가게에서 만났다. 버팔로윙 이야기를 하다가, 신동엽이 90년대 후반 몸이 나빴던 일을 꺼냈다. 그때 하던 방송을 다 그만두고 6개월 동안 미국에 가 있었다고 했다. 기사 제목과 첫 문장은 이 미국 이야기를 앞에 내세웠다. 흐름은 버팔로윙 이야기 → 성시경이 미국에서 처음 먹은 버팔로윙 → 신동엽의 90년대 후반 건강 이야기 → 1999년 사건과의 순서 → 시트콤 소개 순서다.

왜 — 그 자리에서 왜 이 이야기를 했는지는 자료에 따로 없다. 기사에 보이는 것은 순서다. 성시경이 미국 스포츠 바에서 버팔로윙을 먹었다고 하자, 신동엽이 "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국에 간 까닭은 본인 말에 차례대로 나온다. 건강이 안 좋았다 → 간 조직 검사를 했다 → 의사가 술을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 그때 프로그램을 다 그만두고 미국으로 요양(몸을 쉬며 돌봄)을 떠났다. 본인 말에는 '그래서'나 '때문에' 같은 이음말이 없다. '건강 악화로' 떠났다고 이어 쓴 것은 기자의 첫 문장이다.

사례 (기사에 나온 순서대로)

  • 1문단 — 기자가 앞세운 한 줄 — 기자 글이다. 기자는 신동엽이 예전에 건강이 나빠져 미국으로 요양을 떠났다고 밝혔다고 썼다.
  • 2문단 — 어디서 나온 말인가 — 기자 글이다. 기자는 '지난 7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성시경'의 자체 콘텐츠 '만날텐데'에 신동엽이 손님으로 나왔다고 썼다. 성시경은 서울의 한 버팔로윙 가게에서 그를 만났다.
  • 3문단 — 버팔로윙을 좋아한다 — 신동엽 말이다. 그는 버팔로윙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원래 소스를 찍어 먹는 걸 안 좋아하고 늘 소금 위주로 먹는데, 버팔로윙만은 좋아한다고 했다. 버팔로윙을 파는 것 자체가 반갑다고도 했다. 성시경은 버팔로윙만 파는 곳이 많지 않다고 답했다.
  • 4문단 — 성시경이 처음 먹은 곳 — 신동엽이 버팔로윙을 언제 처음 먹고 좋아하게 됐는지 물었다. 성시경은 처음엔 냉동을 먹어 봤고, 미국에 가서 먹고 깜짝 놀랐다고 답했다. 기자는 성시경이 미국에서 버팔로윙을 처음 먹어 봤다고 했다고 썼다.
  • 5문단 — 90년대 후반, 건강이 안 좋았다 — 본인 말이다. 성시경이 "스포츠 바에 가서 먹었다"고 하자, 신동엽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아. 내가 90년대 후반에 말도 안되게, 그때 '남자셋 여자셋' 할 때 건강이 안 좋았다" '남자셋 여자셋'은 그가 나오던 MBC 시트콤(웃음 위주의 연속극)이다. 기자는 이 말을 '털어놨다'고 썼다.
  • 6문단 — 간 조직 검사, 의사의 말, 6개월 미국 — 본인 말이다. "간 조직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술 마시면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 그때 '남자셋 여자셋'도, 하던 프로그램도 다 그만두고 6개월간 미국으로 요양을 떠났다" 간 조직 검사는 간의 작은 조각을 떼어 살피는 검사다. 기자는 이 말을 '회상했다'(돌아보며 말했다)고 썼다. 이어서 성시경이 "그때가 형 출소"라고 했다. 기자는 성시경이 1999년 대마초(마약의 한 가지) 사건을 조심스럽게 꺼낸 것이라고 썼다. 신동엽은 "출소 전"이라고 답했다(출소: 갇혀 있던 곳에서 풀려나 나옴).
  • 7문단 — 시트콤 소개 — 기자 글이다. MBC TV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은 1996~1999년에 방송했다. 하숙집에 함께 사는 대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다. 기자는 최고 시청률 36%를 기록하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고 썼다. 신동엽과 송승헌·홍경인·우희진·이의정·이제니 등이 나왔다.

확인 메모

  • 기사 날짜: 기사 페이지에는 등록 2023년 9월 8일 오전 7시 2분, 수정 같은 날 오전 8시 56분이 적혀 있다. 사진 설명에도 2023.09.08이 적혀 있다. 기사 주소의 번호는 20230907로 시작하지만, 기사에 적힌 날짜는 9월 8일이다. 9월 7일은 영상이 공개된 날이다. 기사가 '지난 7일 공개된'이라고 썼고, 기사가 9월 8일에 나왔기 때문이다.
  • 영상 제목: 기사에는 영상 제목이 없다. 채널 이름 '성시경'과 콘텐츠 이름 '만날텐데'만 있다. 실제 유튜브 영상 제목은 "[sub] 성시경의 먹을텐데 l 압구정로데오 와일드버팔로 1탄 (with.신동엽)"이다. 기사의 '만날텐데'와 영상 제목의 '먹을텐데'가 다르다. 이 요약은 기사만 보고 썼다. 영상은 보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 속 몇 분쯤에 나온 말인지는 모른다.
  • 제목의 따옴표: 기사 제목 "과거 건강 악화에 모든 방송 하차…6개월간 미국 체류"는 따옴표 안에 있지만 본인 말 그대로가 아니다. 본인은 "하던 프로그램도 다 그만두고 6개월간 미국으로 요양을 떠났다"고 했다. '하차'(그만둠), '체류'(머묾)는 기자가 고른 말이다.
  • 숫자의 주인: '90년대 후반', '6개월간'은 본인 말이다. '1996~1999', '최고 시청률 36%', '1999년 대마초 사건'은 기자 글이다. 몇 년 몇 월에 떠나고 돌아왔는지는 이 기사에 없다.
  • 기사에 없는 것: 검사 결과가 어땠는지, 미국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와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이 기사에 없다.
  • '출소 전': 성시경의 말은 기사에 "그때가 형 출소"까지만 실렸다. 그래서 신동엽의 답 "출소 전"이 정확히 어떤 물음에 대한 답인지는 기사만으로 다 알 수 없다. 기자는 성시경이 1999년 사건을 꺼냈다고만 썼다.
  • 다른 자료와 다른 점: 이 미국행을 본인은 '요양'이라고 불렀다. 주간경향 2007년 기사(기자 글)는 '남자 셋 여자 셋' 다음 해에 미국유학 연수(공부하러 감)로 잠시 방송을 쉬었다고 썼다. 그리고 1998년 9월, 1년이 채 안 돼 돌아와 '남자 셋 여자 셋'에 다시 나왔다고 썼다. 같은 기사는 1999년 12월 대마초 사건으로 11개월 동안 방송을 떠났다고 썼다. 10아시아 2009년 기사(기자 글)는 그가 절정기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고 썼다.
  • 그만둔 까닭: 2012년 GQ 코리아 인터뷰에서 본인은 "어 재미없으려고 하네, 하면 바로 그만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자셋 여자셋'도 그랬던 프로그램으로 꼽았다. 이 기사에서는 몸이 안 좋던 그때 다 그만뒀다고 했다. 두 말이 같은 때의 일을 가리키는지는 두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 기사 제목·본문은 시트콤 이름을 '남자셋 여자셋'(본인 말 따옴표 안)과 '남자 셋 여자 셋'(7문단 기자 글)으로 띄어쓰기를 다르게 적었다. 위 요약은 기사 글자를 그대로 따랐다.

3. 내 필기와 정리

  • 10월 13일 손필기 — 신동엽의 학습방식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고 확대할 수 있어요.

필기 제목은 D-80(10-13), 각자가 성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학습방식이다. 대상은 신동엽, 직업은 방송인·코미디언으로 적었다.

  1. 백그라운드: 어릴 때 친구들이 가는 유치원에 가지 못했고, 큰형은 귀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남에게 상처 줄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2. why 계기: 정확한 계기는 없지만, 콩트를 제일 좋아하고, 콩트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했다.
  3. ⇓ what 목표: 신인이 되고 나서 기차 안에서 콩트를 짜 오라고 했었다.
  4. ⇓ how 행동:
    1. 방송사 숙제를 아는 형의 말투로 따라 했다. → (결과) 카메라맨만 웃고, 감독의 반응은 별로. → (분석) 고정 코너가 되었는데 형의 말투로 된 것 같다.
    2. 회의 및 대본도 직접 씀. → 10분짜리 콩트에 시간을 많이 썼다. → 콩트는 본인이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 버라이어티 진행 MC가 되기로 했다.
  5. ⇓ what 목표2: 버라이어티 MC가 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6. ⇓ how 행동2: 여러 프로그램을 하다 몸이 안 좋아짐. → 의사가 술 마시지 X. → 프로그램 그만두고 쉼.
  7. ⇓ what 목표3: 개그맨이 천직이라고 생각.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
  8. ⇓ how 행동3: 새 프로그램마다 PD·작가·시간대를 다 따지고 나를 몰아붙였다. → 시청률 0.1퍼에 잠을 못 자고, 이렇게 사는 게 뭔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시청률 말고 다른 곳에 돌렸다.
  9. ⇓ Conclusion 결론: 아래 4번에 옮겼다.

필기는 백그라운드 → 계기(why) → 목표(what) → 행동(how) → 목표2 → 행동2 → 목표3 → 행동3 → 결론의 흐름으로 적었다. 칸과 칸 사이는 ⇓ 화살표로 이었다. 행동 칸의 한 줄 안에서는 행동 → 결과 → 그 뒤 생각이나 바뀐 것을 → 로 이었고, 행동 1번 줄에는 '(결과)'·'(분석)'을 괄호로 붙였다. 이 칸 순서(백그라운드 → 계기 → 목표 → 행동 → 다시 목표)와 행동 칸의 한 줄 모양은 오늘 대화에서 에이전트가 만들어 보여 준 필기 그림을 참고해 옮겨 적은 부분이다. 백그라운드 칸의 문장은 그 필기 그림의 「배경 한 줄」(에이전트 작성) 앞 세 문장과 거의 같다(앞 두 문장을 '-고'로 이었고, 방송반·신인 때 두 문장은 옮기지 않았다). 목표·행동·목표2·행동2·목표3·행동3 칸도 필기 그림의 칸 내용을 줄여 옮긴 부분이 많다. 계기 칸의 '콩트를 제일 좋아하고, 콩트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필기 그림에서 「참고 — 한참 뒤에 한 말」로 계기에서 따로 뺀 말이다. 필기는 그 앞에 '정확한 계기는 없지만'을 붙여 계기 칸에 적었다. 읽기 어려운 곳: 백그라운드 둘째 줄의 '말을'은 '안을'처럼 보인다(?). 목표 칸 끝 '했었다'는 '했' 뒤 글자를 한 번 고쳐 썼다. 행동 1번 줄의 '고정 코너'는 '고저코너'처럼 보인다(?). 행동2 끝 '그만두고 쉼'은 '그안두고쉼'처럼 보인다(?). 행동3의 '0.1퍼' 앞에는 지운 자국이 있다. 행동3 끝 '다른 곳에 돌렸다'는 쓴 글자 그대로 옮겼고, '눈을' 같은 낱말은 없다.

4. 결론

자료와 필기의 종합 요약 (에이전트 작성): 오늘 자료는 신동엽에 관한 기사 여덟 편이다(2004년 4월 한국일보 인터뷰, 2007년 1월 주간경향 인물 소개, 2011년 5월 TV리포트 방송 기사, 2012년 6월 텐아시아 인터뷰, 2012년 7월 GQ 코리아 인터뷰 1편, 2015년 11월 텐아시아 방송 기사, 2023년 1월 OSEN 방송 기사, 2023년 9월 뉴시스 기사). 2015년 방송에서 그는 어릴 때 친구들이 다니던 유치원에 가고 싶어 엄마를 졸랐지만 못 갔다고 돌아봤다. 2004년 인터뷰에서는 큰형이 청각 장애인이라 아주 어릴 때부터 상처가 될 말이나 행동은 안 했다고 말했다. 신인 때 그는 기차 안에서 하는 개그를 짜 오라는 숙제를 받고, 데뷔 전에 알던 형의 말투를 따라 했다(2023년 본인 말). 2011년 방송에서는 처음엔 카메라맨만 웃고 감독의 반응은 별로였다고 했다. 2023년에는 반응이 좋아서 고정 코너가 됐다고 했다. 2012년 텐아시아 인터뷰에서 그는 이 '레일맨' 때가 가장 행복하면서 가장 힘든 때였다고 돌아봤다.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을 정리해야 해서, 10분짜리 콩트에도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콩트는 무조건 개그맨 본인이 해야 되는 작업"이라서, 버라이어티 진행을 하게 된 건 "일종의 도피"였다고 했다. 그래도 콩트가 제일 힘들어 오래 못 하고 쉬었다가, 그리워서 다시 한다고 했다. 2023년 영상에서는 '남자셋 여자셋'을 할 때 건강이 안 좋아 간 조직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의사가 술을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했고, 그때 하던 프로그램을 다 그만두고 6개월 동안 미국으로 요양을 떠났다고 했다. 주간경향 기자는 그가 1999년 12월 사건으로 11개월 동안 방송을 떠났다가, 2000년 10월 돌아오며 "개그맨은 나의 천직"이라며 용서를 구했다고 썼다. 2004년 한국일보 기자는 그가 인기 프로그램 두 개를 "내가 먼저 지겨워졌다"며 그만뒀다가 6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썼다. 2012년 GQ 인터뷰에서 그는 "6~7년 전 한창 바쁠 때"를 돌아보며 "그때 내 삶은 온통 숫자였다."고 했다. 새 프로그램마다 PD·작가·상대 프로그램·시간대를 다 따졌고, "0.1퍼센트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시청률 말고 다른 생각을 해 보자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사업 실패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며, 예전이라면 안 했을 <강심장>을 맡았다고 했다. 기준이 바뀐 까닭을 사업 실패와 직접 이어 말하지는 않았다. 어떤 방법 덕분에 잘됐다고 본인이 따로 잰 자료는 없다.

필기와 자료가 다른 곳이 있다.

  • 백그라운드의 유치원 이야기는 2015년 텐아시아 기사의 본인 말이다. 왜 못 갔는지는 그 기사에 없다. 큰형 이야기는 2004년 한국일보의 본인 말이다. 본인이 이은 것은 '큰형이 청각 장애인이라 → 상처가 될 말을 안 했다'까지다. 유치원 일과는 잇지 않았다. 이 칸의 문장은 필기 그림의 「배경 한 줄」(에이전트 작성)을 옮긴 것이다.
  • 계기 칸의 '콩트를 제일 좋아하고, 콩트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2012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데뷔하고 20년쯤 지나 한 말이라, 처음 시작한 계기로 한 말은 아니다. 필기도 '정확한 계기는 없지만'이라고 적었다. 오늘 자료에는 개그맨을 고른 까닭을 본인이 말한 곳이 없다.
  • 목표 칸의 기차 안 개그 숙제는 2023년 OSEN의 본인 말이다. 숙제를 누가 냈는지는 기사에 없다. 2011년 TV리포트에서 그는 선배들 콩트 반응이 좋지 않았고, 세트 빌린 돈이 아까워 방송사가 신인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했다. 이 숙제는 본인이 정한 목표가 아니라 받은 일이다.
  • 행동 1번 줄의 '카메라맨만 웃고 감독의 반응은 별로'는 2011년 본인 말이다. '고정 코너가 되었다'는 2011년 기사에서는 기자 글이고, 본인 입으로는 2023년에 "아는 형의 말투를 따라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고정 코너가 됐다"고 했다. 처음 반응이 별로였던 까닭이나, 그 사이 무엇을 바꿨는지는 두 기사에 없다. '형의 말투로 된 것 같다'는 필기의 생각이다.
  • 행동 2번 줄은 2012년 텐아시아 본인 말과 맞다. 다만 목표2 '버라이어티 MC가 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는 자료와 다르다. 본인은 진행을 하게 된 것을 "일종의 도피"라고 불렀다. 목표로 정했다는 말은 없다. 누가 진행을 맡겼는지도 기사에 없다. 이것도 2012년에 돌아본 말이다.
  • 행동2는 2023년 뉴시스의 본인 말과 맞다. 다만 '여러 프로그램을 하다 몸이 안 좋아짐'에서 일 때문에 몸이 나빠졌다는 말은 기사에 없다. 본인은 '남자셋 여자셋'을 할 때 건강이 안 좋았다고만 했다. 미국에 간 일은 자료마다 다르다. 본인은 6개월 동안 요양을 떠났다고 했다. 주간경향 기자는 '미국유학 연수'로 갔다가 1년이 채 안 돼 1998년 9월 돌아왔다고 썼다.
  • 목표3의 '개그맨이 천직'은 주간경향이 옮긴 2000년 10월 복귀 때의 말과 맞다. 다만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은 원문과 뜻이 조금 다르다. 원문은 "최선을 다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밖에 달리 별 도리가 없다"이고, 기자는 그가 이 말로 용서를 구했다고 썼다. 필기는 행동2(미국 요양)에서 바로 목표3으로 넘어갔다. 주간경향에 따르면 그 사이에 1998년 9월 복귀와 1999년 12월 사건, 11개월의 공백이 있다.
  • 행동3은 2012년 GQ 본인 말과 맞다(PD·작가·상대 프로그램·시간대를 다 따짐, 자기를 쥐어짜고 밀어붙임, 0.1퍼센트, "이게 뭔가"). 다만 이것은 2012년에 "6~7년 전 한창 바쁠 때"를 돌아본 말이라, 2000년 복귀 바로 뒤의 일은 아니다. 필기의 '다른 곳에 돌렸다'에 대해 본인은 시청률 말고 다른 생각을 해 보자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무엇으로 눈을 돌렸는지는 그 답에서 바로 말하지 않았다.
  • 결론의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도'는 2012년 텐아시아 본인 말과 맞다. '어떻게 보일까 대신 어떻게 할 수 있을까'는 2012년 GQ 본인 말과 맞다. 다만 필기 행동 칸에는 이 기준으로 일을 고른 장면(<강심장>을 맡은 일)이 없다. 기준을 바꾼 까닭을 사업 실패와 직접 이어 말한 곳도 없다.

내가 직접 내린 결론 (필기의 'Conclusion 결론' 칸): 콩트를 시작했는데, 하다가 쉽지않아서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일까 대신 어떻게 할수있을까에 신경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