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1, 10월 12일 (월) — 유재석이 가장 낮은 상에 남 탓을 하다가, 형들 덕에 다시 서고 콩트를 녹화 직전까지 연습한 흐름
오늘 자료는 유재석에 관한 글 네 편이다(2010년 7월 10아시아 인물 기사, 2013년 6월 중앙일보 영문판 인터뷰, 2021년 7월 JTBC 엔터뉴스 인터뷰 세 편, 2023년 3월 비즈한국 칼럼). 2013년 인터뷰에서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을 웃기는 게 좋았다고 돌아봤다. 소풍·축제 같은 학교 행사가 있으면 웃기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10아시아 기자는 그가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4번 다니며 낯을 가리는 아이가 됐다고 썼다. 고2 때는 친구 '찍새'와 15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며 콩트를 준비해 KBS 프로그램 연말 결선까지 갔다고 썼다. 그는 1991년 서울예대에 들어가자마자, 졸업하고 하라는 교수의 말과 달리 KBS 대학개그제에 나갔다. 맨 위 등수를 기대했지만 가장 낮은 상에 이름이 불렸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불만의 표시로 귀를 후비며 상을 받으러 나갔다고 했다. 데뷔 뒤에는 늘 무대 한가운데서 빛날 줄 알았지만, 무시당하고 일찍 바닥까지 떨어졌다. 아이디어를 내 보려 하지 않았고, 매일 밤 자기 전에 남 탓만 했다. 이름이 알려진 뒤 그는 그 까닭을 이렇게 짚었다. 노력을 충분히 안 했고 늘 남 탓을 했다. 그리고 자기만 생각했다(2013년 영어 인터뷰의 번역). 친구 박수홍·김용만 등이 불러 준 추석 특집 무대에서는 떨려서 대사를 잊고 춤도 틀렸다. 그 무대로 자기를 꼭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짐이 됐다고 했다. 2021년 인터뷰에서는 처음 시작할 때 큰 좌절을 겪고 그냥 학교에 다니려 했다고 말했다. 그때 박수홍·김용만 형이 찾아와 "재능이 있으니 같이 하자"고 했다. 10아시아 기자는 그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김용만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며 설득했다고 썼다. 군대를 마친 뒤 리포터 일에서는 대본을 100번 넘게 읽고 틀릴 곳에 표시해 뒀지만, 카메라 앞에서 틀려 잘렸다(2013). 2023년 비즈한국 칼럼이 옮긴 팟캐스트에서 그는 송은이·김숙과 '남편은 베짱이' 콩트를 하던 때를 돌아봤다. "나에겐 이거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아침 10시에 모여 새벽 23시에 헤어지는 날을 한 주에 45일 보냈다고 했다. 김숙은 리허설을 100번쯤 해서 녹화 때 틀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송은이는 그때 내공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2021년에 그는 "뭔가를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필요하면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9년의 힘든 시기에는 기회를 주면 불평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고 했다. 2010년 기사 맨 앞 인용에서는 성공한 프로그램보다 실패한 프로그램이 더 많았다고 했다. 새 프로그램은 지난번 문제를 알고 고치며 시작한다고 했다. 어떤 방법 덕분에 잘됐다고 본인이 따로 잰 자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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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 영상
2. 영상에서 말한 내용
1. 유재석 (텐아시아, 2010)
링크: https://www.tenasia.co.kr/article/2020012286014
아래는 텐아시아(그때 이름 10아시아)가 2010년 7월 19일에 낸 유재석 인물 기사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10아시아가 사람마다 하나씩 쓰던 인물 기사의 유재석 편이다(기사 끝 목록 이름은 '10 Line'). 기사 제목은 '유재석' 한 단어다. 맨 앞에 유재석이 인터뷰에서 한 말을 싣고, 기자가 쓴 짧은 소개 글로 연다. "데뷔 20년. 늘 기회를 원하던 무명 개그맨은 대한민국 예능의 정상이 됐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불안하다. 그리고, 계속 달리고 있다." 그 뒤 사람 13명을 차례로 세운다. 어릴 때 좋아한 코미디언 구봉서로 시작한다. 고교 친구, 데뷔 동기, 무명 때 도와준 형, 그를 추천한 배우, 함께 프로그램을 한 동료들을 거친다. 막 시작한 '런닝맨'을 함께하는 지석진으로 끝난다. 이름을 따라 읽으면 어린 시절 → 데뷔와 무명 → 진행자로 자리 잡기 → 팀을 꾸리는 방법 → 그때의 고민 순서가 된다.
왜 — 기자는 이 글을 왜 썼는지 따로 적지 않았다. 다만 소개 글과 마지막 항목이 같은 말을 한다. 정상에 올랐지만 지금도 불안하고, 그래서 계속 달린다는 것이다. 마지막 항목에서 기자는 "그는 언제나 불안 속에서 자신과 동료와 쇼를 성장시켰다."라고 썼다. 그리고 '런닝맨'을 2회 만에 실패라고 정할 수 없다며, 지켜보라는 말로 글을 끝냈다.
사례 (기사에 나온 순서대로)
- '유재석'(맨 앞 인용) — 실패가 더 많았다 — 본인 말이다. 첫마디는 "좋아도 너무 기뻐하지 말고, 안 좋아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였다. 그는 성공한 프로그램보다 실패한 프로그램이 더 많다고 했다. "녹화하러 갔는데 세트가 없어진 것도 있고." 그때는 너무 화가 났지만,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될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실패한 뒤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이런저런 생각을 내게 된다고 했다. "이건 저번에 했는데 이런 문제들이 있었더라" 하고 알고 고치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니 프로그램의 목표까지 가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 '구봉서' — 웃기기 좋아한 아이, 낯가림, 어머니의 청소 — 구봉서는 그가 어릴 때 좋아한 코미디언이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어릴 때 코미디언이 되고 싶던 그는 학교에서 썰렁한 개그로 친구들을 웃기길 좋아했다. 누가 "띠가 뭐냐?"고 물으면 "땀띠에요"라고 하는 식이었다. 집에서는 장난도 심했다. 여동생들이 그가 아끼는 장난감을 숨기자, 동생들의 남자 인형 머리를 깎고 "군대 갔다"고 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4번 하면서, 새 사람 앞에서 낯을 가리는 아이가 됐다. 친구들이 '유티'(유재석+E.T.)라고 부르자 상처받아 학교를 빠진 적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반장이 됐다. 집에 돈이 넉넉지 않아, 어머니는 육성회비(예전에 학교에 내던 돈)를 못 내는 대신 학교에 와서 청소를 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울었다. 기자는 그의 프로그램이 친한 친구들과 노는 놀이판 같은 것이 이런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장난꾸러기의 천성과 조숙하고 내성적인 성장 과정의 결합."이라고 정리했다(조숙: 나이보다 일찍 철듦, 내성적: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음).
- '찍새' — 고2 때 15일 동안 준비한 콩트 — 찍새는 그의 고등학교 친구다. 기자 글에 따르면, 그는 K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서 찍새와 산에서 놀다 여자 깡패들에게 맞은 이야기를 해 화제가 됐다. 고2 때는 찍새와 함께 K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 나갔다. 영화(이름이 빠짐)를 흉내 낸 콩트(짧은 웃기는 연극)로 연말 결선까지 갔다. 두 사람은 15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며 콩트를 준비했다. 방송사를 설득해, 학교에 결석을 허락해 달라는 ‘협조공문’(방송사가 학교에 보내는 공식 부탁 편지)까지 받았다. 그때 그는 "수학을 어디다 써야 할지 몰라" 수학 책을 펴 보지도 않을 만큼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를 잘하길 바라서 둘 사이에 다툼이 많았다. 그는 아버지가 집에 오면 독서실에 간다며 나가는 식으로 작게 반항했다고 한다.
- '최승경' — 장려상, 그리고 콩트 속 작은 역 — 최승경은 그와 함께 K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 나가 장려상을 받은 개그맨이다. 기자는 그가 "내가 방송에만 나가면 세상이 뒤집어질 줄 알았"다고 했다고 썼다. 그런 그는 상을 받으러 나오면서 귀를 파는 건방진 모습을 보여, 선배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셌다. 그는 콩트 프로그램에서 조연(주인공이 아닌 작은 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베짱이'의 뻔뻔하고 촐싹거리는 남편 같은 역은 아주 잘했다. 그런데 그때는 심형래·이창훈 같은 바보 캐릭터(방송 속 인물)가 인기였다. 개인기 없이 말솜씨와 타이밍만으로 웃기는 인물은 눈에 띄기 어려웠다고 기자는 썼다. '봉숭아 학당'에서 맡은 역도 깐죽거리는(얄밉게 놀리는) 반장, 여자 같은 성격의 남자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만 서면 무대 울렁증(무대에서 몹시 떨리는 것)이 왔다. 그래서 남희석·김용만·김국진처럼 버라이어티 쇼(여러 사람이 나와 게임·이야기를 하는 예능)로 나갈 수도 없었다. 집에는 개그맨이 된다고 큰소리쳤는데 되는 게 없었다. 기자는 이때를 "개그맨을 관둘지 고민하던 시기."라고 적었다.
- '김용만' — 호프집에서 설득해 준 형, 군대에서의 반성 — 김용만은 그가 고민을 털어놓는 형이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그가 근육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김용만이 자기가 다니던 헬스클럽에 그를 데려가서였다. 무명 때 그는 크게 실망해 일을 그만두고 김태균과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자 김용만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그는 군대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오버"하던(지나치게 튀게 굴던) 자기를 반성하고 마음을 새로 먹었다. 길은 안 보였지만, 그만두려고 하면 "일이 하나씩 들어와 그만두지도 못하던" 때였다. 불교 신자인 그는 부처에게 이렇게 기도하기도 했다. "이 길에 들어서긴 했는데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기회를 주시면 오늘 기도한 거 잊지 않고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는 사람이 되겠다" 그때 일을 되새기며 그는 이런 마음을 갖게 됐다고 기자는 썼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니까 언제나 (정상에서 내려올) 마음의 준비를 늘 하고 있다" 괄호 안 말도 기사에 그렇게 적혀 있다.
- '故 최진실' — 정지 버튼을 누르고 '나라면?' — 최진실은 1990~2000년대 최고의 스타다. 기자 글에 따르면, 최진실은 2000년에 MBC 예능 PD 은경표에게 "KBS에 메뚜기라는 개그맨이 진짜 웃기더라"며 유재석을 추천했다. 그 무렵 유재석은 매일 예능 프로그램을 녹화했다. 진행자(MC)가 말하기 직전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자기라면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먹고살려고 온갖 토크쇼와 밤무대(밤에 여는 행사·업소 무대)에 나가면서 무대 울렁증을 이기기 시작했다. 메뚜기 탈을 쓰고 리포터(현장에 나가 소식을 전하는 사람) 역을 하며, 어떤 상황에도 맞춰 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김제동이 한 말도 기사에 실렸다. "유재석이 좋은 거 보자며 집에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오더라. 알고 보니 자기가 출연한 방송을 녹화한 테이프였다" 그는 K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서 멀리뛰기 7m 50cm로 1등을 해, 메뚜기 같은 점프 실력을 보이기도 했다.
- '이범수' — '동거동락'에서 진행자로 자리 잡기 — 이범수는 '동거동락'에 함께 나온 배우다. '동거동락'은 은경표 PD가 그에게 진행을 맡긴 MBC 프로그램(이름이 빠짐) 속 코너다. 기자는 그가 여기서 진행자로서 자기 특징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고 썼다. 여러 연예인을 모아 즐거운 놀이판을 만들었다. 이범수 같은 출연자의 특징을 잡아 캐릭터를 만들었다. 진행자이면서 출연자들에게 구박받는 역도 했다. 기자는 이 자리가 평소엔 소심하지만 놀 자리가 깔리면 마음껏 노는 '오락부장'(반에서 놀이를 맡는 사람)이던 그에게 맞는 자리였다고 썼다. 기자는 '동거동락'을 젊은 연예인 여럿이 함께 나오는 버라이어티 쇼의 시작점으로 봤다. 그가 여기서부터 진행자와 출연자 사이의 벽을 허물고, 새 시대 진행자의 기준을 보였다고 썼다.
- '강호동' — 함께 만든 '리얼' 버라이어티 — 강호동은 그와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한 진행자이자 친구다. 기자는 두 사람을 2000년대 후반 예능의 대세라고 썼다. K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의 'MC 대격돌'은 겉으로는 '쿵쿵따게임'을 했다. 하지만 게임을 핑계로 출연자끼리 사생활을 폭로하고 약점을 들추며 계속 치고받았다. 기자는 이것이 MBC '퀴즈의 달인'의 처음 모양이라 할 만하다고 썼다. 다른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서는 강호동이 '강팀' 주장이 돼 게임을 휘저었고, 유재석이 이를 조절했다. 그래서 더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썼다. 모두를 아우르는 그의 진행과, 진짜 같은 긴장감을 잘 만드는 강호동이 만나 '리얼'한 '버라이어티쇼'가 생겼다고 기자는 봤다.
- '김원희' — 5년 넘게 이어 가는 프로그램, 9번 타자 이야기 — 김원희는 만 6년을 넘긴 MBC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그와 함께 진행하는 사람이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예전 예능은 시청률과 상관없이, 진행자 계약 기간이나 방송사 개편(프로그램을 새로 바꾸는 일)에 따라 없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모두 5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기자는 그 까닭을 그가 늘 가진 생각에서 찾았다. 그 생각은 "9번 타자가 9번 타자 역할을 해주고, 외야수가 외야수의 역할을 해주면서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화합이 돼야 최강의 팀"이라는 것이다(화합: 서로 잘 어울림). 그래서 자기 뜻대로 팀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썼다. 그래도 그는 무명 시절 때문인지 지금도 "개편 철엔 굉장히 불안"하다고 썼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진 빚을 갚으려고 쉬지 않고 일했다. 쉬지 않으려면 시청률을 지켜야 했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모든 것을 다하는" 예능인이 되고 싶었다고 기자는 썼다.
- '김태호' — 평균 이하의 설움, 그리고 '자아실현' — 김태호는 그와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만든 PD다. 기자 글에 따르면, 그는 '천하제일 외인구단'(프로그램 이름이 빠진 코너)과 SBS '유재석과 감개무량'에서 '대한민국 평균이하'들의 "자라오면서 받았던 콤플렉스들, 설움들을 표출"하고 싶어 했다(표출: 겉으로 드러냄). 그리고 김태호와 만든 프로그램으로 "자아실현"에 성공했다(자아실현: 바라던 자기 모습을 이룸). 기자는 이렇게 썼다. 김태호는 먼 앞을 보고 프로그램을 키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프로그램을 안정되게 끌고 가려는 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김태호를 만나 시청률과 유행을 함께 잡았다. 매주 장르가 바뀌는 그 프로그램에서 진행·몸 개그·성대모사·토크를 다시 익혔다. 기자는 이것을 '복습'이라고 불렀다. 레이싱이나 에어로빅을 배우기도 했다. 기자는 그가 김구라의 말처럼 "방송도 더할 나위 없이 잘하고, 개인기도 있고, 연기도 잘하고, 스스로 망가지는 것도 잘하는" 예능인이 됐다고 썼다.
- '박명수' — 말썽꾼 동료, 그리고 방송 밖의 대화 — 박명수는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서 "유재석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했던 예능인이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프로그램을 안정되게 끌고 가는 그에게는 박명수처럼 말썽을 일으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 박명수가 무엇을 던지면 그가 그걸 키우거나 되받아친다. 이것은 그가 출연자들과 방송 밖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된다. 그는 박명수 집의 크고 작은 일을 챙겼다. 처음에 그만두려던 정준하를 설득해 남게 했다. 방송에 나갈지 망설이던 신인 노홍철을 목욕탕에 데려가 몸을 씻겨 주며 설득했다. 기자는 그의 팀워크가 진행 실력만이 아니라, 그 뒤의 "끊임없는 조정 작업" 덕분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 '신봉선' — 새 사람을 찾아 쓰기 — 신봉선은 그와 함께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 나오는 진행자다. 그가 연출자에게 "재미있을 것 같다"며 추천했다. 리쌍의 길과 개리도 한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거쳐, 다른 프로그램(이름이 빠짐)과 SBS '런닝맨'에 함께 나온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그는 팀이 중요한 걸 알고, 연예인들과 꾸준히 친해진다. 새 사람을 계속 뽑고, 그들의 캐릭터를 찾아낸다. 코미디언 출신들로만 꾸린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은 그의 '놀이판'의 절정이다. 유재석·박미선·박명수·신봉선이 브라질 축구팀처럼 저마다 다른 역을 맡는다. 그래서 어떤 손님이 와도 일정 수준 넘게 웃기고, 노래·춤·상황극까지 할 수 있다. 기자는 이것이 "끊임없는 시행착오"(해 보고 틀리며 배우는 일)를 겪은 그가 자기 생각을 이뤄 줄 연출자를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그만의 예능이라고 썼다.
- '이효리' — 거리낌 없이 구박하는 짝 — 이효리는 그와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 가수이자 진행자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박명수는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새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이효리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예능과 가요 양쪽의 스타였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그를 구박할 수 있었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서로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 덕에 프로그램이 빨리 자리 잡았다. 강호동도 다른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에서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1인자들이 저마다 자기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지금은, 이런 톱스타를 만날 가능성이 줄었다. '런닝맨'에서 그는 거의 혼자 프로그램을 이끌어야 한다. 기자는 그가 누구를 통해 새 색깔을 더할 수 있을지 물으며 이 항목을 맺었다.
- '지석진' — 막 시작한 '런닝맨', 불안 속에서 키운 것 — 지석진은 그의 친구이고, 그와 함께 '런닝맨'을 끌고 간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두 팀으로 나뉘어 게임을 하는 '런닝맨'에서 지석진은 사실상 2인자 역을 해야 한다. 하지만 빠른 게임에 휩쓸려 아직 뚜렷한 역할을 못 한다. 오히려 사진 찍기 게임에서 활약한 개리, 어설픈 모습을 보인 광수가 스스로 캐릭터를 잡아 간다. 게임이 계속 이어지는 짜임이라, 그도 출연자들의 캐릭터나 이야기를 만들 시간이 없다. 기자는 '런닝맨'이 그의 장점을 묶어 놓고 시작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2회만으로 실패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시청률·가족·동료의 짐을 지고도 모두를 끌어안아 재미를 만들었다고 썼다. 가족과 흥행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 낸 것도 최근 일이라고 썼다. 기자는 "그는 언제나 불안 속에서 자신과 동료와 쇼를 성장시켰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가 이제 누구도 가지 못한 예능의 길을 갈 기회를 얻었으니 지켜보라는 말로 글을 끝냈다.
확인 메모
- 이 기사 주소의 번호는 2020으로 시작하지만, 기사에 적힌 입력 날짜는 2010년 7월 19일이다. 기사 맨 아래 글쓴이 줄은 "글. 강명석", "편집. 장경진"이다. 다음 회 예고로 KBS 프로그램(이름이 빠짐)을 그와 함께 진행한 유진이 적혀 있다.
- 이 기사에서 본인 말로 분명한 것은 맨 앞 인용 하나다. 어느 매체와 언제 한 인터뷰인지는 이름이 빠져 있어 기사로는 알 수 없다. 최진실·김제동·김구라·박명수의 말은 기사가 그 사람의 말이라고 밝혔다.
- 나머지 큰따옴표 조각("내가 방송에만 나가면 세상이 뒤집어질 줄 알았", "한 번이라도 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오버", "개편 철엔 굉장히 불안", 9번 타자 이야기, 부처에게 한 기도, "자라오면서 받았던 콤플렉스들, 설움들을 표출" 등)은 누가 언제 한 말인지 기사에 없다. 유재석의 말을 옮긴 것으로 보이지만, 이 기사만으로는 본인 말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 몇 문장에는 다른 매체 기사 링크가 붙어 있다. 방송에만 나가면 세상이 뒤집어질 줄 알았다는 문장에는 일요신문, '유티' 문장에는 TV리포트, 아버지 빚 문장에는 일간스포츠 기사로 가는 링크다. 기자가 다른 기사를 모아 쓴 대목이라는 뜻이다.
- 전학 '4번', 고2 때 '15일', 멀리뛰기 '7m 50cm', '만 6년', '5년 이상'은 모두 기자가 쓴 숫자다. 15일 동안의 준비가 첫 출연을 위한 것인지 연말 결선을 위한 것인지는 기사에 없다. 몇 학년 때 전학을 다녔는지도 기사에 없다. 이 '4번 전학'은 2021년 세계일보 기사에서 본인이 말한 '대학 1학년을 네 번 다녔다'와는 다른 이야기다.
- 장려상을 받은 대회 이름은 이 기사에서 빠져 있다. 2008년 스포츠경향 기사(기자 글)는 이것을 1991년 KBS 대학개그제 장려상으로 적었다. 이 기사는 귀를 판 일을 '건방진 모습'으로 썼다. 본인은 2013년 중앙일보 영어판 인터뷰에서, 1등을 기대했는데 가장 낮은 상을 받아 불만의 표시로 귀를 후볐다고 말했다.
- 군대에서 반성했다는 대목은 기자 글이다. 언제 군대에 있었는지, 무엇을 보고 반성했는지, 그 뒤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바꿨는지는 기사에 없다.
- 정지 버튼을 누르고 '나라면 뭐라고 할까'를 고민한 연습도 기자 글이다. 언제부터 얼마 동안 했는지, 왜 이 방법을 골랐는지는 기사에 없다. 김제동의 비디오테이프 이야기도, 그 테이프를 보고 무엇을 고쳤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헬스클럽에서 하루에 얼마나 운동했는지도 기사에 없다.
- 호프집 이야기는 자료마다 다르다. 이 기사(기자 글)는 김태균과 함께 일했고 김용만이 설득했다고만 썼다. 2022년 텐아시아 기사가 옮긴 방송 '놀면 뭐하니?'에서 본인은, 그만둔다고 하고 호프집에서 일하는데 용만이 형·수용이 형·수홍이 형이 찾아와 추석 특집 '스텝 바이 스텝'을 같이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2021년 일요시사 기사(기자 글)는 '6개월간' 방송국에 안 나갔고, 박수홍·김용만·지석진·김수용 네 사람이 찾아왔다고 적었다.
- 어릴 때 소풍·축제 같은 학교 행사마다 웃기는 역을 맡았다는 말은 이 기사에 없다. 그 말은 2013년 중앙일보 영어판 인터뷰의 본인 말이다. 이 기사에는 썰렁한 개그로 친구들을 웃기길 좋아했다는 것과, 평소엔 소심하지만 놀 자리에선 '오락부장'이었다는 것만 있다(둘 다 기자 글).
- '평균이하'들의 콤플렉스와 설움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대목을 그의 어린 시절(전학·낯가림·육성회비)과 이어 주는 말은 기사에 없다.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항목에 따로 나온다.
2. With fame comes humility for Yoo Jae-suk (중앙일보 영문판, 2013)
링크: https://www.koreajoongangdaily.com/lifestyle/with-fame-comes-humility-for-yoo-jae-suk/10959862
아래는 중앙일보 영문판(Korea JoongAng Daily)이 2013년 6월 12일에 낸 유재석 인터뷰 기사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2013년 6월에 실린 유재석 인터뷰다. 기자는 주말에 TV 채널을 돌리면 어디에나 유재석이 나온다는 말로 글을 연다. 토요일엔 MBC '무한도전', 일요일엔 SBS '런닝맨'이다. 기자는 사람들이 그를 '국민 MC'라고 부른다고 썼다. '무한도전'의 예능인으로, 8년 동안 이어진 '놀러와'의 진행자로 이름을 알렸다고도 썼다. 문답에서 유재석은 어린 시절, 개그맨이 된 일, 가장 낮은 상과 긴 무명 시절, 무대에서 떨던 일, 서세원쇼, 지금 하는 프로그램, 앞날과 별명, 바라는 평가를 차례로 이야기한다.
왜 — 기자는 유재석이 다른 개그맨과 다르다고 썼다. 화난 듯한 태도의 박명수, 선배 배우 흉내로 알려진 김영철과 달리 그에게는 딱히 유명한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기자는 여기에 유재석의 말을 붙였다. 예전 소속사 대표가 카리스마(사람을 휘어잡는 힘)가 없다고 나무랐을 때, 그는 그게 불편했던 적이 없다고 답했다. "As it is hard to change one’s personality, I told him that unless it’s something he can buy for me, I will just live my life."(우리말로 옮기면 — 성격은 바꾸기 어려우니, 대표님이 사 줄 수 있는 게 아니면 그냥 이대로 살겠다고 했어요.) 기자는 이런 성격이 그를 막지 못했다고 썼다. 그 예로 지난달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비롯해 상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늘 남에게 묻기만 하고 자기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달 초 중앙일보와 마주 앉아, 스타가 되기까지 울퉁불퉁했던 길을 들려주었다고 기자는 썼다. 기사 제목은 '유명해지면서 겸손이 따라왔다'는 뜻이다.
사례 (말한 순서대로)
- 'What were you like when you were young?' — 학교 행사의 웃기는 담당 — 아주 웃긴 아이였다고 했다. 장난을 많이 쳤다. "I was in charge of entertainment whenever there were school events such as field trips or festivals."(우리말로 옮기면 — 소풍이나 축제 같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웃기는 일을 맡았어요.) 초등학생 때는 공부도 열심히 했다며, 이건 꼭 말해 두고 싶었다고 했다.
- 'Since when did you dream of becoming a comedian?' —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나간 대회 — "I have loved making my friends laugh since elementary school, so it was natural for me to decide on this career."(우리말로 옮기면 —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 웃기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이 일을 고른 건 자연스러웠어요.) 1991년 서울예대에 들어가자마자 KBS 대학개그제에 나갔다. "My professor said I should try it after I graduated, but I was dying to become a comedian."(우리말로 옮기면 — 교수님은 졸업하고 해 보라고 했지만, 저는 개그맨이 너무 되고 싶었어요.) 결과는 가장 낮은 상이었다고 했다.
- 'How did it feel to get that award?' — 맨 위를 기대했는데 — "I was arrogant."(우리말로 옮기면 — 제가 거만했어요.) 맨 위 등수를 기대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늘 웃기다고 말해 줘서, 자기가 나오면 개그계가 깜짝 놀랄 줄 알았다. TV 속 개그맨들이 서로 자기를 데려가려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낮은 상에 이름이 불렸다. "I thought something had gone wrong and that there had been a huge mistake."(우리말로 옮기면 — 뭔가 잘못됐다고, 큰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 'What did you do?' — 귀를 후비며 받은 상 — "I picked my ear while I went up to receive the award as a sign of protest."(우리말로 옮기면 — 불만의 표시로 귀를 후비면서 상을 받으러 나갔어요.) 진짜 세상이 어떤지 몰랐다고 했다. 방송에 들어간 뒤 다른 개그맨들이 그를 찾아오긴 했다. 하지만 그가 바란 까닭이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서 귀를 후빈 거만한 그를 찾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크게 잘못했고, 개그맨이 된 것만으로도 고마워했어야 했다고 했다. 무명 생활이 그렇게 시작됐다고 했다.
- 'You were unknown to the public for seven or eight years. What was the problem?' — 노력을 덜 하고 남 탓만 — "It was very simple. I didn’t put in enough effort and I always blamed others."(우리말로 옮기면 — 아주 간단해요. 노력을 충분히 안 했고, 늘 남 탓을 했어요.) 잘 안 되는 게 자기 탓이라고 여긴 적이 없다고 했다. 남들이 자기 값어치를 몰라준다고 믿었다. 한번은 폭탄 맞은 사람 역을 받았다. 머리를 헝클고, 얼굴에 검은 분장을 하고, 가장 해진 옷을 입어야 했다. 그 역에 최선을 다했어야 했는데, 더 깔끔해 보일 궁리만 했다고 했다. PD가 자기를 싫어해서 이런 역을 주나 하고 생각했다. "I never tried to come up with ideas [for the comedy shows]. I just blamed other people every night before I went to bed."(우리말로 옮기면 — [개그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내 보려고 한 적이 없어요. 매일 밤 자기 전에 남 탓만 했어요.)
- 'Do you regret your actions?' — 뜻 없이 보낸 20대 — 20대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시간을 뜻 없이 보낸 일이라고 했다. "What a waste of time."(우리말로 옮기면 — 정말 시간 낭비였죠.) 목표 없이 남 흉만 보던 때가 아주 후회된다고 했다. 무언가에 열정을 쏟았다면 이런 후회는 없었을 거라고 했다.
- 'When did you start having anxiety attacks onstage?' — 친구들이 불러 준 추석 특집 — 정처 없이 떠돌며 어떤 프로그램에도 뽑히지 않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박수홍·김용만 같은 친구들이 추석 특집 프로그램에 불러 주었다. 미국 가수 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는(패러디) 무대였다. 모르는 사람들 앞 무대에 서자 그냥 떨리기 시작했다. "I forgot my lines and didn’t get the dance moves right at all. I felt burdened by my desire to really prove myself through that act."(우리말로 옮기면 — 대사를 잊어버렸고 춤 동작도 하나도 못 맞췄어요. 그 무대로 저를 꼭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짐이 됐어요.)
- 'You worked for a while as a reporter on “Entertainment Weekly” after you were discharged from the Army. How was that?' — 대본을 100번 읽어도 — "I read the script more than 100 times and marked the parts where I would mess up."(우리말로 옮기면 — 대본을 100번 넘게 읽고, 틀릴 것 같은 곳에 표시해 뒀어요.) 그런데 [소식을 전하라고] 불리면 어려운 곳에 닿기도 전에 틀렸다고 했다.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고, 글자가 다 춤추듯 뒤섞였다. "So, I was fired."(우리말로 옮기면 — 그래서 잘렸어요.)
- 'Did it get better when you were cast on the “Seo Se-won Show,” one of the most popular television programs at the time?' — 떨면서 한 사소한 이야기 — 그때도 떨었다고 했다. 입이 떨리고 손도 떨렸다. "Surprisingly, audiences liked to see me talking about trivial stories while trembling."(우리말로 옮기면 — 놀랍게도 관객들은 제가 떨면서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에 웃을지 몰랐는데, 반응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사람들이 별명 '메뚜기' 대신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The show was the greatest turning point in my life."(우리말로 옮기면 — 그 쇼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삶이 바뀐 계기)이었어요.)
- 'After you started to put your name out there, did you realize what kept you out of the spotlight for so long?' — 나만 주인공이어야 했다 — 늘 무대 한가운데서 다른 사람보다 빛날 줄 알았다고 했다. "But I was ignored, and so I crashed down to the bottom too early in my career. I kept asking myself what went wrong."(우리말로 옮기면 — 그런데 무시당했고, 일을 시작하자마자 너무 일찍 바닥까지 떨어졌어요. 뭐가 잘못됐는지 계속 저한테 물었어요.) 문제는 자기만 생각한 것이었다고 했다. 야구 선수가 자기 자리를 지키며 팀으로 뛰듯, 개그도 팀으로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팀이 잘되는 것보다 혼자 튀는 것만 생각했다. "I should have showed reactions to my counterparts’ good jokes, but I was narrow-minded and didn’t want to simply help them [gain popularity]. In my head, I had to be the only lead character."(우리말로 옮기면 — 동료가 좋은 농담을 하면 반응해 줬어야 했는데, 속이 좁아서 [그들이 인기를 얻도록] 돕기 싫었어요. 제 머릿속에선 저만 주인공이어야 했어요.)
- 'You have been on “Infinite Challenge” for seven years. What’s your take on the program?' — 우리 삶이 담긴 프로그램 —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고 했다. 프로그램에 출연자들의 삶이 담겨 있다고 했다. 박명수가 결혼해 딸 민서를 낳았고, 그 뒤 그의 아이도 태어났다. 결혼한 출연자가 점점 늘었다. 앞날을 함부로 짐작하면 안 되지만, 자기 방송 일은 이 프로그램과 함께 갈 것 같다고 했다.
- 'What about “Running Man”?' — 믿고 따라온 사람들 걱정 — 첫 회가 나간 뒤, 주말 프로그램으로 잘될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겁이 났다.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를 믿고 [프로그램에] 따라온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봐서였다.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멤버들이 다시 흩어졌을 거라고 했다.
- 'Do you think you are at your peak?' — 옛날 사람이 될 날 — 가장 좋은 때가 아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 좋은 때에 머물고 싶지만, 그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언젠가 [사람들이] 유재석은 옛날 사람(old school)이라고 말할 거라고 했다. 그때를 준비하고 있고, 막상 그때가 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As long as I pledge to do my best for as long as I can, there is nothing to be afraid of."(우리말로 옮기면 — 할 수 있는 한 오래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한, 두려울 건 없어요.) 가끔은 지난날을 떠올리겠다고 했다. 아들에게 아빠가 예전에 잘나갔다고 하면 믿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 'Have you ever suffered from depression or felt the urge to take your own life?' — 걱정은 했지만 — 걱정은 할 만큼 했지만, 우울증을 앓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솔직히 죽음이 무섭다고 답했다.
- 'You have many different nicknames. Which one do you like the most?' — 싫었던 별명 '메뚜기' —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메뚜기'라고 했다. 처음엔 아주 싫었다. 1990년대 후반, 한 방송 PD가 그에게 메뚜기 탈을 주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걸 쓰고 나가라고 했다. 그때는 메뚜기라고 불리는 게 싫었고, 그냥 유재석이고 싶었다. 탈 때문에 머리도 엉망이 됐다. "But it made me who I am now."(우리말로 옮기면 — 그래도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 'Do you work to project a certain kind of image on your shows?' — 그 순간에 집중 — "I don’t plan what I do. I just focus on what comes at the moment."(우리말로 옮기면 — 뭘 할지 미리 짜지 않아요. 그 순간 오는 것에만 집중해요.) 세게 말해야 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지금 이미지를 계속 지킬 생각도 없다고 했다. 출연한 손님들이 너무 긴장하지 않도록 이런 말을 해 준다고 했다. 예능에서 남을 웃기기는 쉽지 않고, 자기도 그 어려움을 겪어 봐서 안다고 했다. 웃긴 순간이 있으면 좋지만, 매일 농담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 'How do you want your fans to remember you?' — "최선을 다했구나" — 이런 평을 듣고 싶다고 했다. "Oh, he really did his best."(우리말로 옮기면 — 아, 저 사람 정말 최선을 다했구나.) 평 안에 '재밌다'나 '흥미롭다' 같은 말까지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확인 메모
- 기사는 2013년 6월 12일에 실렸다. 기자는 인터뷰를 '이달 초'에 했다고 썼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은 '지난달'에 받았다고 썼다(기사가 2013년 6월이니 5월).
- 무명 '7~8년'(seven or eight years)은 기자가 질문에 쓴 숫자다. 유재석의 답에는 기간 숫자가 없다. 2021년 7월 1일 JTBC 인터뷰에서 그는 직접 "9년의 힘든 시기"라고 했다. 2008년 7월 7일 스포츠경향 기사도 9년이라고 적었다(기자 글). '무한도전 7년'도 기자 질문의 숫자이고, '놀러와 8년'은 기자 소개 글의 숫자다.
- 대회 전 기대가 자료마다 다르다. 이 기사(2013)에서는 "I expected to be ranked [at the top]."라고 했다. 'at the top'(맨 위)은 신문사가 대괄호로 넣은 말이다. 2021년 5월 KBS2 '컴백홈' 방송을 전한 일간스포츠 기사(5월 9일)에서는 "최소 동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장려상이었다"고 했다.
- 이 기사는 받은 상을 'the lowest award'(가장 낮은 상)라고만 적었다. 상 이름은 없다. 2008년 스포츠경향 기사(기자 글)와 2021년 '컴백홈' 기사(본인 말)는 장려상이라고 적었다.
- 대학개그제가 1991년이라는 것은 '1991년 서울예대에 들어가자마자 나갔다'는 본인 말에서 나온다.
- 추석 특집이 몇 년이었는지는 기사에 없다. 추석 특집과 리포터 일 가운데 무엇이 먼저였는지도 기사에 없다. 불러 준 친구는 '박수홍·김용만 등'이라고만 적혀 있다.
- 리포터를 한 프로그램은 영어 이름 'Entertainment Weekly'로만 적혀 있다. 한국 프로그램 이름은 기사에 없다. 때는 질문에 '군대를 마친 뒤'라고만 있고, 사진 설명에 '1990년대 후반'이라고 적혀 있다.
- 대본을 100번 넘게 읽은 연습이 통하지 않아 잘렸다는 데까지가 본인 말이다. 잘린 뒤 연습을 어떻게 바꿨는지, 떨림을 어떻게 이겨 냈는지는 이 기사에 없다. 2010년 7월 19일 10아시아 인물 사전에는 기자 글로 이런 내용이 있다. 그가 매일 예능을 녹화해 MC가 말하기 직전에 멈추고, 자기라면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밤무대에 나가며 무대 울렁증을 이겨 내기 시작했다. 본인 말은 아니고, 원래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도 적혀 있지 않다.
- 서세원쇼에 나간 해는 기사에 없다. 이 문답은 떨림을 고친 이야기가 아니다. 떨리는 채로 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통했다는 이야기다. 그 반응을 보고 무엇을 바꿨는지는 기사에 없다.
- 무명이 길었던 까닭을 언제 깨달았는지 본인은 말하지 않았다. 질문이 '이름이 알려진 뒤'라고만 했다. '반응해 줬어야 했다'는 뒤늦게 돌아본 말이다. 실제로 어떻게 바꿨는지는 이 기사에 없다. 같은 야구 비유는 2021년 7월 JTBC 인터뷰에서 다시 나온다. 그때는 '무한도전'에서 진행을 맡은 까닭을 설명하며 썼다.
3. 유재석 단독 인터뷰 ①②③ (JTBC 엔터뉴스, 2021)
링크: ① https://news.nate.com/view/20210701n32625 · ② https://news.nate.com/view/20210701n32694 · ③ https://news.nate.com/view/20210701n32768
아래는 JTBC 엔터뉴스팀이 2021년 7월 1일에 세 편으로 나눠 낸 유재석 인터뷰 기사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유재석이 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을 받은 뒤, JTBC 엔터뉴스팀과 마주 앉아 한 인터뷰다. 기자는 그의 인터뷰가 8년 만이라고 썼다. 데뷔 30주년 무렵이다. 기사는 백상 심사평 "유재석이 유재석을 넘어섰다."로 시작한다. 유재석은 개그맨이라는 직업, 30년 동안 지켜 온 약속, '무한도전'·'놀면 뭐하니?'·'런닝맨' 같은 프로그램, 처음 시작할 때의 좌절, 집과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왜 — 기자는 대상 트로피를 건네며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썼다. 그는 늘 남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이라, 그의 속 깊은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고 썼다. 그래서 이번 자리가 특별하다고 했다. 기자가 본 모습도 적었다. 유재석은 시작 전에 홍보팀(소속사에서 말과 기사를 챙기는 사람들)에게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밖에서 쉬세요"라고 했다. 곤란한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했다. 한 시간 예정이던 인터뷰를 30분 더 이어 갔다. 평소 인터뷰를 왜 잘 안 하느냐는 물음에는 "할 거면 모든 매체와 다 만나야죠"라며 웃었다고 썼다.
사례 (말한 순서대로)
- ①'한 달이 지났지만 다시 한 번 수상 축하드려요. 수상을 전혀 예상 못 했나봐요.' — 꿈에도 몰랐던 대상 — 지난해 예능상을 받아서, 올해는 상을 주는 일만 생각했다고 했다. 후보에 오른 것도 얼떨떨했다. "대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 ①'수상 후 1997년 방영된 … '남편은 베짱이'팀과 오랜만에 만나 회식했더라고요.' — 옛 코너 동료들과 밥 — 늘 "한 번 모이자"는 말만 하다가 마침 시간이 맞았다고 했다. 김수용·송은이·김숙과 고기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예전부터 밥을 한 번 사겠다고 했던 자리였다.
- ①'소감 중 '개그맨'이라는 걸 강조했어요.' — 사라질까 겁나는 직업 — 미리 생각한 말이 아니라 소감을 말하다 문득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희극인(웃음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직업이 이러다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했다. 그게 겁났다고 했다.
- ①'진짜 '개그맨'이 사라지고 있어요.' — 끝난 개그콘서트 — 자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개그콘서트'가 끝났을 때 생각이 많았다고 했다. 이제 남은 코미디 프로그램은 '코미디 빅리그' 하나라고 했다. 방송도 바뀌고 플랫폼(영상을 올리고 보는 곳)도 많아졌다. 그래서 개그맨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 ①'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후배들을 뽑는 콘텐스트를 하는 건 어떨까요.' — 뻔하지 않은 웃음이 먼저 — 아직 그럴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해도 요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볼거리를 만들 수 있을지 늘 의문이라고 했다. 뻔한 수가 안 보이는 웃음이 있다면 모를까, 아니면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 ①'요즘 후배들이 유튜브로 새 활로를 찾았어요.' — 유튜브의 후배들 — 방송국이 희극인을 뽑지 않아도 후배들이 새 플랫폼에서 여러 가지를 해 본다고 했다. 도와준 건 없지만 보면 뿌듯하고 대단하다고 했다. 시장이 더 커지면 자기 같은 사람들이 힘을 보태도 좋겠다고 했다. 이어진 질문 '유튜브도 자주 보나요. 눈여겨보는 후배가 있나요.'에는 요즘 제일 눈에 띄는 후배로 김해준을 꼽았다. 그래서 올해 초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불렀다고 했다.
- ①'직접 유튜브를 할 생각은 없나요.' — 꾸준히 올릴 수 있을까 — 유튜브도 TV처럼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라 선뜻 나설 용기가 없다고 했다. 이미 재미있게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이어진 질문 '대중은 평범한 유재석 씨의 일상을 담은 콘텐트도 좋아할 것 같아요.'에도 같은 뜻으로 답했다. 보는 사람은 기대가 있으니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약속한 시간에 꾸준히 올려야 하는데, 그걸 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갸우뚱이면 차라리 하지 말아야죠."
- ①'어김없이 30년간 대중과 약속을 지켜오고 있잖아요.' — 일주일에 프로그램 넷, 꽉 찬 지금 — "그건 약속이기에 지키는 게 당연한데 아직까진 여유가 없어요." 그는 한 주에 프로그램 네 개를 하고 있고, 지금도 꽉 차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여기서 하나 더 늘리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 ①'30년간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나요.' — 필요하면 하는 사람 — "뭔가를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필요하면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는 결혼과 함께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체력을 키우려고 운동을 시작했다. 고른 일에 책임을 지려고, 포기해야 할 게 있으면 "과감히 내려놓아요."라고 했다.
- ①'그 약속을 지키는게 너무 힘들잖아요. 일탈도 꿈꾸진 않나요.' — 하나에 꽂히지 않는 사람 — 지금까지 일이 "죽을 만큼 힘들진 않아요"라서 일탈(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하나에 꽂히는 사람이 아니고 "'그러다 말지'라는 주의"라고 했다. 맛집이라도 줄을 서야 하면 다른 집에 간다. 어느 정도 맛만 있으면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①'그래서 차선책을 택했다고 하기엔 결과물이 다 완벽했어요.' — 숙제는 싫지만 맡으면 해낸다 — 방송으로 보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주어지는 숙제가 싫어서 피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일단 주어진 건 잘 해내야죠." '무한도전'을 하면서 그런 책임감이 더 생겼다고 했다.
- ①'두려움도 이겨낼 만큼 책임감이 정말 강하네요.' — 9년 동안의 기도 — 자주 하는 이야기라며, 데뷔 뒤 초반 9년의 힘든 때를 꺼냈다. 그때 기도를 많이 했다.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절대 불평하지 않겠다고 했다. 맡은 일에 게으르면 어떤 벌도 받겠다고도 했다. 그 기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매주 방송은 "시청자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방송의 한 사람이 됐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 ②'MBC '무한도전'은 지금도 인기가 식지 않아요. '무한도전'은 어떤 의미였나요.' —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 — 그때도 "인생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무한도전이 끝나면 다른 버라이어티(여러 코너가 섞인 예능)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끝난 지 3년이 지났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시작할 때 방송국 높은 사람이 '10년 해보자'고 했는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고 했다.
- ②'김태호 MBC PD와 함께 동반 성장을 했네요.' —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던 편 — 김태호 PD는 신선한 자극을 많이 준 제작자라고 했다.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이 진짜 신선했다고 했다. 시작하자마자 "이거 진짜 뭐야?" 싶었고,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끝나고 나서도 이게 뭔가 싶었다고 했다.
- ②''무한도전' 초창기 때는 유약한 캐릭터였다가 요즘은 짜증도 내고 화도 내는 캐릭터로 변했어요.' — 팀에 필요한 역할 — 무한도전 때는 자기가 진행을 안 하면 엉망이 되니,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야구팀도 홈런 타자만 있다고 이기지 않는다고 했다. 서로 잘 맞아야 팀이 이기고 프로그램이 잘된다. 그는 무엇을 맡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팀 내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걸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황에 맞출 뿐 일부러 꾸민 건 아니라고 했다. "최고의 조합은 아니더라도 최선의 만듦을 위해 함께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②'… 다른 아이템들도 확장 가능성이 열려 있나요.' — 나 없이도 굴러가는 프로그램 — 기자는 '무한상사'의 세계관(프로그램 속 이야기 세상)을 넓힌 시도를 칭찬하며 물었다. 그는 끝없이 넓혀 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출연자가 자유롭게 들고 나는 프로그램을 꿈꾼다고 했다. 무한도전은 형식만 자유로웠고 출연자는 그러지 못했다. 처음엔 시행착오(해 보며 틀리고 고치는 일)가 있겠지만 "저 없이도 이 프로그램이 계속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 ②'최근에 신하균 씨와 '유퀴즈'에서 재회한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 대학 후배 신하균 — 신하균은 대학 후배라고 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처음 보고, '런닝맨'에서 잠깐 본 뒤로는 따로 말한 적이 없었다. 이번 백상에서 만나 반가워서 인사했다. 그 이야기를 '유퀴즈' 제작진에게 하자 섭외(출연을 부탁하는 일)해 보겠다고 했고, 진짜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진지하고 조용하며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 친구였다고 했다.
- ②''유퀴즈' 출연자를 섭외할 때 의견을 내지 않나요.' — 마지막 결정은 제작진 — 자기나 조세호가 '이분 섭외하면 어떨 것 같다' 정도로 말한 적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이 '이것을 해라'로 전해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함께 정한 결론의 마지막 결정은 제작진이 한다.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고, 어떻게 넘을지 이야기한다고 했다. "각자의 포지션에서 해야 할 업무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요."
- ②'지금까지 거쳐온 프로그램 중 다시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요.' — 혼자서는 계속 못 한다 — 딱히 없다고 했다. 다만 함께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혼자 하는 것이 '놀면 뭐하니?'의 특징이 됐지만, 혼자 계속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혼자서는 분량과 웃음을 뽑는 데 한계가 있다. 매주 일정한 재미를 줘야 하니 다른 방향으로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 ②''놀면 뭐하니?'로 또 한 번 틀을 깼다는 평가를 들어요.' — 앞에 있는 일을 했을 뿐 — "앞에 있는 일을 한 게 전부예요." 무한도전이 끝나고 '놀면 뭐하니?'가 자리 잡기까지 위기로 보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재미있는 걸 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좋은 말을 들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 ②'MSG워너비가 이번에도 차트를 올킬했어요. 하지만 이런 현상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어요.' — 듣고 싶던 음악, 그리고 고민 — 기자는 음원 순위를 휩쓴 일을 안 좋게 보는 눈도 있다고 물었다. 그는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으로서, 요즘 멋진 음악이 많아도 '이런 음악이 듣고 싶은데?' 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걸 '놀면 뭐하니?'에서 다루고,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감사하지만, 큰돈을 들인 새 음악이 관심을 못 받고 사라지면 허탈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 부분을 제작진과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담은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 ②'KBS 2TV '컴백홈'은 좋지 않은 성적으로 끝났어요.' — 또 하나의 배움 — 제작진을 믿었고, 그 믿음은 변함없다고 했다. 시청자 호응을 많이 얻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론 또 하나가 배움이었어요."라고 했다.
- ②'tvN '식스센스2'는 첫방송이 됐고요.' — 색다른 내 캐릭터 — 다른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자기 캐릭터가 있어 재미있다고 했다. 색다른 경험이라고 했다.
- ②'SBS '런닝맨'에선 이광수 씨가 하차했어요.' — 한 번에 못 채우는 빈자리 — 시청자들이 허전함을 크게 느낄 것 같다고 했다. 녹화하면서 계속 광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빈자리는 한 번에 채울 수 없다.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하는 동안은 열심히 하자고 서로 힘을 낸다고 했다.
- ②'한때 '유재석 위기론'도 있었어요.' — 남들이 다 한 건 안 해도 된다 — 시청률에 따라 기쁘고 슬픈 직업은 맞다고 했다. 하지만 흐름을 너무 몰라도, 너무 휩쓸려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듣고 속상했지만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남들이 다하는 걸 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유행을 이끈다는 뜻이 아니라, 남들이 다 했으니 자기는 안 해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유행에 맞추면 안정적이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 같다고 했다. "승부수를 던져야 흥망이 있죠." 승부수는 이기고 짐을 거는 한 수, 흥망은 잘되고 망하는 것이다.
- ②'망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나요.' — 끌리는 걸 한다 — "솔직히 개인적으론 없어요." 다만 망하면 많은 사람이 힘들어지니 그게 어렵다고 했다. 처음부터 두려움이 없던 건 아니고, 일을 해 보다 보니 차츰 사라졌다고 했다. "결국 끌리는 걸 하고 진행하는 게 맞다고 봐요."
- ②'30년 전 유재석은 지금을 예상했나요.' — 학교로 돌아가려던 때 — "전혀요. 단 요만큼도 예상하지 못했죠." 그는 처음 시작할 때 너무 큰 좌절을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학교에 다니려고 했고, 방송국에 가지 않았다. 그때 박수홍·김용만 형이 찾아와 "재능이 있으니 같이 하자"고 했다고 했다.
- ②'지금 시점에서 30년 뒤를 예상해 보자면요.' — 계획을 그리지 않는 사람 — "계획을 그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때까지 방송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냐고 했다. 동료들과는 나이 들면 자주 모여 놀러 다니자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렇게 지내고 있지 않을까 했다.
- ②'지금까지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정말 다양한 도전을 해왔잖아요.' — 욕심이 아니라 책임감 — 새 분야에 대한 욕심은 "하나도 없었어요"라고 했다. 능력도 관심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주 한 주 방송을 해야 하니,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감일 수 있다고 했다. 책임감만으로 된 건 아니지만 "그런 책임감이 아니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 ②'혹시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 분야가 있나요.' — 무서워도 뛴 번지점프 — 하면서 '정말 잘 맞는다' 싶은 건 없었다고 했다. 그냥 한 주 방송을 위해서 한다고 했다. 예전 '출발 드림팀' 촬영으로 뉴질랜드에서 125m 높이 번지점프를 해야 했다. 그는 고소공포증(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증상)이 있어 아파트 난간에도 잘 못 다가간다. 그래도 "이걸 안 뛰면 방송 나갈 게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무서웠지만 뛰었다. 번지점프를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익숙해져서 뛴 적은 없다고 했다. 귀에 들리던 바람 소리가 아직 생생하고, 심지어 겨울이었다고 했다.
- ③'데뷔 30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 처음부터 잘된 건 거의 없다 — 기억에 남는 때를 여럿 꼽았다. 처음으로 방송사를 옮겨 진행한 MBC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시민들을 만나러 다닌 '느낌표', 그리고 '무한도전'·'X맨'·'공포의 쿵쿵따'다. '공포의 쿵쿵따'는 끝난다는 말이 돌 때 김석윤 PD가 끝말잇기를 한번 해 보라고 했다. 해 보니 잘됐다. '무한도전'은 6개월 하고 끝낸다고 했을 때 뉴질랜드에 다녀왔고, 그게 달라진 시작점이 됐다. "뭔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잘 된 거지 시작하자마자 잘 된 건 거의 없어요."
- ③''런닝맨'은 좀 쉽게 풀린 편 아닌가요.' — 끝나기 직전의 태국 촬영 — "'런닝맨'도 초반엔 '저건 뭐냐?' 그런 반응이었어요." 곧 끝난다는 말이 돌 때, 연출 PD가 협찬(돈이나 물건을 대 주는 곳)이 들어와 태국에 간다고 했다. PD는 태국 촬영이 뒤집는 계기가 되지 않으면 끝날 수도 있다고 했다. 열심히 해 보자고 하고 갔는데 공항에서부터 깜짝 놀랐다. 팬이 아주 많이 나와 있었다. 지석진에게 "오늘 한류스타가 오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자기들을 보러 왔다고는 생각 못 했다고 했다. 출연자도, 국내 시청자도, 제작진도 놀랐다.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 ③'한류 스타잖아요.' — 해외 공연의 꿈과 현실 — "제가요?" 하고 웃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지만, '런닝맨'으로 함께 공연 다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했었다. 공연 초기에 지석진은 해외에서 큰 환호를 받다 인천공항에 내리면 화려한 꿈을 꾸다 현실로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 ③'유행을 따라가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최신곡이나 최신 뉴스에 밝더라고요.' — 신문, 그리고 운동하며 듣는 음악 — 일부러는 아닌데 예전부터 신문 보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너무 바빠 못 읽으면 뒀다가 읽는다. 음악은 운동하면서 듣는다. 일부러 공부하거나 유행을 알려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다. 젊은 세대처럼 다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흐름은 알아야 이야기가 되고, 시청자분들에게 전달이 되니 하는 거죠." 휴대폰보다 신문이 편해서 신문을 주로 본다고 했다. "책 한 권을 보고 난 것처럼 보고 접으면 기분이 좋아요."
- ③'야외 예능을 계속하는데 힘이 부치진 않나요.' —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 찍는 방식이 바뀌어 예전처럼 몰아붙여 찍지 않는다고 했다. 시청자도 출연자에게 푹 빠져 보니, 출연자가 같이 힘든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보다 아주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 ③'인터뷰를 잘 안 하는 편이죠.' — 인터뷰와 게스트 출연을 안 하는 까닭 — 안 하는 게 아니라, 매체가 너무 많아 하려면 다 해야 해서 늘 고민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월례 행사처럼"(매달 하는 행사처럼) 할 수는 없다며 웃었다. 하기 싫어서가 절대 아니라고 했다. 이어진 질문 '게스트 출연도 안 하잖아요.'에는 특정 프로그램에만 나갈 수 없어서라고 했다. 인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에만 나가면 다른 곳에 미안하다는 것이다.
- ③'주로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 집에서 하는 일 — 집안일이 있으면 하고, 괜찮겠다 싶으면 방에서 책 보고 TV를 본다고 했다. 찾으면 아이 돌보기도 돕고 밥도 차린다. 요리는 잘 못 하지만 라면은 잘 끓여서 직접 끓여 먹는다고 했다.
- ③'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인가요.' — 시간을 내려고 애쓰는 아빠 — 잘 놀아 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라고 했다. 이어진 질문 '아이들이 아빠를 자주 찾나요.'에는 딸 나은이가 유독 자기를 좋아하고 자주 찾는다고 했다. 아내 나경은 씨도 의외라고 한다고 했다. 나은이를 볼 땐 자기가 늘 웃고 있다고들 한다고 했다.
- ③'아들 지호도 아빠가 무슨 일을 하고 대단한 사람인지 아나요.' — 친구들 때문에 묻는 아들 — 지호는 성격이 자기와 비슷해 티를 내지 않지만, 학교 친구들이 말하니 아는 것 같다고 했다. 가끔 "아빠 근데 그건 뭐야?" 정도를 묻는데, 친구들에게 답해 주려고 묻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진 질문 '사춘기가 왔나요.'에는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라 자기만의 세상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온라인 수업을 잘 듣나 자주 들여다보는데, 지호가 자꾸 문을 닫는다고 했다.
- ③'주위에서 일상과 관련한 목격담도 거의 들리는 게 없는 것 같아요.' — 집 앞만 다닌다 — 나가도 집 앞 빵집·문방구·마트 정도만 간다고 했다. 생각보다 잘 못 알아본다고 했다. 마스크 때문일 수도 있고, 후드나 모자를 쓰고 다녀서일 수도 있다고 했다.
- ③'연예계 대표 '선행의 아이콘'이에요. 이 수식어가 때론 부담되지 않나요.' — 살아 있는 한 끝까지 — 많은 분께 사랑을 받아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벌이가 좋아 할 수 있지만, 나중엔 못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살아있는 한 끝까지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 ③'요즘 골프 붐이 일었는데 혹시 골프도 치나요.' — 운동 하나도 겨우 — 예전에 쳤지만 지금은 못 친다고 했다. "운동 하나도 겨우 해요." 주변에 치는 사람이 많아 쳐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고 했다. 2년 전쯤 지인과 치러 가기로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골프 옷이 1990년대 말 타이거 우즈 전성기 때 산 옷이라, 도저히 입고 나갈 수 없어 다음에 가자고 미뤘다고 했다.
- ③'다른 취미는 전혀 없나요.' — 집에 있는 게 좋다 — 뭔가 하고 싶거나 해야겠다는 게 별로 없어서 마땅한 취미가 없다고 했다. "그냥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 ③'본인 소유의 차도 크게 화제가 됐어요.' — 틀에 가두지 말아 달라 — 상황에 맞아서 산 차가 국산차였을 뿐이라고 했다. 국산차인 게 대단한 것처럼 말해서 당황스럽다고 했다. 앞으로도 괜찮아 보이면 살 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자꾸 '유재석은 그렇다'는 틀을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제작진에게도 늘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야. 절대 내가 이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줘. 난 하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야. 너희들이 결정해라" 그리고 "틀 안에 갇혀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 ③'뜬금없지만 머리칼이 엄청 까맣네요.' — 2주마다 염색 — 새치(젊을 때 나는 흰머리)가 많다며 웃었다. 20대부터 새치가 나서 그때부터 자주 염색한다고 했다. 2주에 한 번씩 하는데 너무 귀찮다고 했다.
- ③'… 끝으로 국민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면요.' — 웃음에 집중하는 예능 — 동료들과 웃음에 더 집중하는 예능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예능으로 많은 분이 쉬고 마음의 위안을 얻길 바란다고 했다. 방송사들도 힘들지만, 과감한 변화나 도전 없이는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다고 했다. 힘든 때에도 "깔깔깔 웃을 수 있는 예능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그러려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확인 메모
- 세 편 모두 네이트 뉴스에 2021년 7월 1일 오후 3시 52분·53분·54분에 실렸다. 인터뷰한 날짜는 기사에 없다. 기자 질문에 대상을 받고 "한 달이 지났지만"이라는 말만 있다.
- 글로 주고받은 인터뷰가 아니라 마주 앉아 한 인터뷰다. ①의 기자 글에 "90분간 만남", 홍보팀에게 밖에서 쉬라고 한 일, 한 시간 예정에 30분을 더한 일이 나온다. '인터뷰는 8년만이다'도 기자 글이다. 8년 전 인터뷰가 무엇인지는 기사에 없다.
- 세 편 제목은 모두 큰따옴표로 묶여 있지만, 본문 말과 글자가 다르다. 기자가 줄여 쓴 제목이다. ① 「유재석 "일탈 꿈꿀만큼 아직까지 많이 힘들진 않아"」의 본문 말은 "지금까지 일들이 죽을 만큼 힘들진 않아요. 그래서 일탈을 생각하지도 않고요."이다. ② 「유재석 "망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지만…"」의 본문 말은 "망하는 걸 두려워하진 않아요. 다만 망하면 많은 사람이 힘들어지니 그게 어렵죠."이다. ③ 「유재석 "아이들과 시간 가지려 노력하는 아빠"」의 본문 말은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이다. 작은 제목은 없다.
- 기사 첫머리의 "유재석이 유재석을 넘어섰다."는 백상예술대상 심사평이다. 그 뒤 '뼈를 깎는 변화를 통해 위기와 한계를 극복했고'는 기자 글이다. 둘 다 유재석 본인의 말이 아니다.
- ①의 '9년의 힘든 시기' 앞 "(데뷔한 뒤 초반)"은 괄호로 묶인 말이라, 기자가 덧붙인 설명일 수 있다. 9년이 몇 년부터 몇 년까지인지는 기사에 없다. 데뷔한 해도 숫자로 없다. 기사에는 '데뷔 30주년', '30년 전'이라는 말만 있다.
- 결혼과 함께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지만, 결혼한 때는 이 인터뷰에 없다. 스포츠경향 2008년 7월 7일 기사는 '지난 6일' 결혼식을 했다고 기자 글로 적었다. 운동을 언제, 얼마나 하는지도 기사에 없다. ③에서는 "운동 하나도 겨우 해요."라고 했다.
- 형들이 찾아온 때가 자료마다 다르다. 이 인터뷰(②)에서는 큰 좌절 뒤 그냥 학교에 다니려 하고 방송국에 안 갈 때였다. 찾아온 사람은 박수홍·김용만 둘이다. MBC '놀면 뭐하니?' 방송을 옮긴 2022년 텐아시아 기사(2월 27일)에서는 다르게 말했다. 그만둔다고 말하고 호프집에서 일할 때, 김용만·김수용·박수홍이 찾아와 추석 특집 '스텝 바이 스텝'을 같이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몇 년도 일인지는 두 자료 모두에 없다.
- 무엇 때문에 크게 좌절했는지, 왜 다시 하기로 했는지는 이 인터뷰에 없다. 그는 선배들이 한 말만 전했다.
- '공포의 쿵쿵따'·'무한도전'·'런닝맨'이 끝날 뻔한 이야기에는 시청률 같은 숫자가 없다. 각각 몇 년 일인지도 없다. 무한도전이 뉴질랜드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없다. ②의 뉴질랜드 번지점프는 '출발 드림팀' 촬영이라, 무한도전의 뉴질랜드와는 다른 프로그램 이야기다.
- '컴백홈'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기사에 없다. "또 하나가 배움이었어요"라는 말만 있다.
- 한 주에 하는 프로그램 넷이 무엇인지 그가 이름을 대지는 않았다.
- ③ 질문의 '유행을 따라가지는 않는다고 했지만'은 기자가 앞의 말을 줄인 것이다. ②에서 그는 "남들이 다하는 걸 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했고, "그게 꼭 유행을 이끈다는 의미는 아니고"라고 했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그대로 말한 곳은 기사에 없다.
- 신문을 하루 중 언제, 얼마나 읽는지는 기사에 없다. 신문 읽기가 일에 도움이 됐다는 말도 없다. 그는 흐름을 알아야 이야기가 된다는 까닭만 말했다.
4. [관계의 기술] 송은이·김숙·유재석이 고달픔을 이겨낸 꾸준함에 대하여 (비즈한국, 2023)
링크: https://bizhankook.com/articles/25300.html
아래는 비즈한국이 2023년 3월 7일에 낸 칼럼(글쓴이의 생각을 담은 글)의 요약이며 직접 인용이나 전체 옮겨 적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 비즈한국 「관계의 기술」 연재에 실린 칼럼이다. 칼럼니스트 김수연은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아래 '비밀보장')의 400회 방송을 듣고 이 글을 썼다. 그 방송에 유재석이 손님으로 나왔다. 세 사람은 20대 무명 시절에 함께 짜고 연기한 콩트(짧은 웃기는 연극) '남편은 베짱이' 때를 돌아봤다. 칼럼은 앞쪽에서 세 사람의 말을 옮긴다. 뒤쪽에서는 칼럼니스트의 생각을 펼친다.
왜 — 칼럼니스트는 세 사람에게도 미래가 어둡고 불안한 때가 있었다고 썼다. 그리고 보통 사람과 달랐던 점은 걸어온 길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라고 봤다. 세 사람이 "지독할 정도의 꾸준함"으로 지금 자리를 만들었다고 썼다. 칼럼니스트는 사람의 의지가 생각보다 약하다고 썼다. 그래서 힘들 때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은 정신력이나 열정이 아니라 ‘꾸준한 루틴’(늘 하는 일을 정해 두고 되풀이하기)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것은 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칼럼니스트의 생각이다.
사례 (글에 나온 순서대로)
- 1문단 — 비밀보장 400회 — 칼럼니스트는 비밀보장이 400회를 맞았다고 소개한다. 8년 동안 이어진 방송이다. 인터넷으로 받은 고민을 진행자가 지인이나 전문가에게 전화해 함께 풀어 주는 방식이다.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8년 전 방송에서 불러 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자 송은이·김숙이 자기들이 나올 방송을 스스로 계획해 만들었다. 칼럼니스트는 이 방송이 두 사람에게 두 번째 전성기(가장 잘나가는 때)를 안겼다고 썼다.
- 2문단 — 손님 유재석 — 송은이·김숙은 400회를 축하하는 자리에 유재석을 손님으로 불렀다. 칼럼니스트는 유재석을 두 사람에게 늘 조언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이 문단 앞에는 방송 화면을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다.
- 3문단 — 6시간과 2시간 — 칼럼니스트는 세 사람을 오래된 친구이자 선후배 사이로 소개한다. 김숙·송은이는 녹화를 6시간 하겠다고 장난스럽게 예고했다. 유재석은 2시간이 넘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하겠다고 받아쳤다. 칼럼니스트는 처음부터 말이 끊이지 않는 즐거운 방송이었다고 썼다.
- 4문단 — 청취자의 질문 — 청취자(방송을 듣는 사람)가 유재석에게 묻는 코너, 고민을 골라 주는 코너가 이어졌다. 그런데 칼럼니스트의 귀를 붙잡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한 청취자가 세 사람이 20대였을 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셋이 함께 코너를 짜고 연기한 '남편은 베짱이' 콩트 시절 이야기다.
- 5문단 — 유재석: 아침 10시에 모여 새벽 2~3시까지 — 유재석이 먼저 답했다. "어찌 보면 서로 고달픈 시기였어요." 그는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어도 두 사람을 많이 몰아치며 연습시켰다고 했다. 콩트를 짜고 연습하느라 "아침 10시에 모이면 새벽 2
3시에 헤어지는 걸 주 45일 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정이었다고 했다. 그때 그는 "나에겐 이거밖에 없다. 무조건 올인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콩트가 이미 재미있어도 녹화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 끈질기게 연습을 더 했던 것 같다고 했다(올인: 가진 것을 모두 거는 것). 인생에서 그렇게 열심히 산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살았다고 했다. "정말 치열하게 했습니다." - 6문단 — 김숙: 리허설만 100번쯤 / 유재석: 미래가 없던 때 — 김숙이 말을 받았다. "리허설만 한 100번은 했던 거 같아요." 리허설(녹화 전에 미리 해 보기)을 그만큼 해서, 녹화 때는 틀린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어서 유재석은 셋이 지금 같은 좋은 날을 맞을 줄 몰랐다고 했다. "그 프로그램을 하던 당시에는 미래가 없었고 하루하루가 정말 불안한 시기였거든요."
- 7문단 — 송은이: 그때 생긴 내공 — 송은이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공이 생긴 거 같아요." 내공은 오래 쌓은 실력을 말한다. 송은이는 셋이 그때 엉덩이를 붙이고 오래 버티며 해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8문단 — 칼럼니스트: 울컥함과 세 사람의 지금 — 칼럼니스트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울컥했다고 썼다. 그때 세 사람은 무명이었다. 함께 콩트를 짜는 그 프로그램을 세상의 전부로 여겼다고 썼다. 지금 유재석은 최고의 방송인으로 불린다. 송은이는 회사 건물을 마련했고, 연예인을 돌보는 회사와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를 이끈다. 김숙은 몇 명 안 되는 KBS 연예대상 여성 수상자다. 칼럼니스트는 이런 세 사람에게도 미래가 어둡고 불안한 때가 있었다고 썼다.
- 9문단 — 칼럼니스트: 의지보다 꾸준한 루틴 — 칼럼니스트는 사람의 의지가 생각보다 약하다고 썼다. 힘들 때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은 ‘꾸준한 루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예로 유재석이 지금 자리를 만들려고 오래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을 들었다. 또 방송국이 찾지 않자 비밀보장을 8년째 직접 만들어 온 송은이·김숙을 들었다.
- 10~11문단 — 드라마 「대행사」의 대사 — 칼럼니스트는 성공을 이끄는 것은 열정보다 꾸준함이라고 썼다. 이 생각을 돕는 예로 JTBC 드라마 「대행사」 마지막 회 장면을 옮겼다. 어려운 일에 부딪힌 고아인(이보영)이 조문호 대표(박지일)를 찾아간다. 조 대표가 길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고아인이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조 대표가 말한다. "길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성공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길이라고 부르는 법이니까." 이것은 드라마 대사다. 세 사람이 한 말이 아니다.
- 12문단 — 칼럼니스트가 독자에게 묻기 — 칼럼니스트는 세 사람이 그 콩트를 짜며 내공을 키운 루틴대로 하던 일을 계속해 와서 지금 자리에 왔을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지금 하는 일에 길이 보이지 않아 불안한가. 그렇다면 불안해하는 시간에, 해 오던 일을 루틴처럼 꾸준히 이어 가는 데 힘을 써 보면 어떠냐고 했다.
- 13문단 — 칼럼니스트의 응원 — 하던 일을 긴 산책하듯 꾸준히 하면 언젠가 남들도 내가 걸어온 자국을 '길'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썼다. "매일, 조금씩, 무심하게." 칼럼니스트는 독자가 걷는 길이 진짜 길이 되기를 응원하며 글을 맺는다.
- 글 끝 — 필자 소개 — 김수연은 영화 잡지·패션 잡지·생활 잡지 등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을 써 왔다고 적었다. 지금은 친환경 화장품·세제 브랜드를 알리는 일을 한다고 적었다.
확인 메모
- 숫자는 모두 세 사람이 2023년 방송에서 기억으로 한 말이다. '아침 10시에 모여 새벽 2
3시에 헤어짐'과 '한 주에 45일'은 유재석의 말이다. 콩트를 짜고 연습하려고 모였다가 헤어진 시간이다. 그 시간 내내 연습만 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몇 주·몇 달을 그렇게 했는지는 칼럼에 없다. - '100번'은 김숙이 "리허설만 한 100번은 했던 거 같아요."라고 어림해서 말한 숫자다. 실제로 센 숫자가 아니다. '녹화 때 틀린 적이 없었다'도 김숙의 기억이다.
- '6시간'과 '2시간'은 400회 녹화를 두고 주고받은 농담이다. 20대 때 연습 시간과는 관계없다. '8년'과 '400회'는 칼럼니스트가 비밀보장을 소개하며 쓴 숫자다.
- 5문단의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어도"에서 그 생각을 누가 했는지는 칼럼 문장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 칼럼에는 이 콩트가 어느 방송사·어느 프로그램의 코너였는지, 몇 년도였는지, 몇 달 했는지가 없다. 칼럼에 나오는 'KBS'는 8문단에서 김숙의 연예대상 수상을 말할 때 한 번뿐이다. '20대였던 시절'도 칼럼니스트가 청취자의 질문을 옮기며 쓴 말이다.
- 같은 콩트 이름이 4문단에서는 '남편은 베짱이', 12문단에서는 '베짱이 남편'으로 다르게 적혀 있다.
- 다른 자료와 다른 점: KBS 공식 코미디 유튜브 채널에 같은 이름의 '코미디세상만사 남편은베짱이' 영상이 1997년 10월~1998년 3월 방송분으로 남아 있다(영상 제목에 적힌 방송일 다섯 개만 확인했다). 영상 제목에는 유재석(백수 남편 '재석')과 송은이(처제)만 나오고 김숙은 나오지 않는다. 이 칼럼의 콩트를 그 코너와 잇는 근거는 이름이 같다는 점, 그리고 엑스포츠뉴스 2021년 1월 17일 기사가 기자 말로 '코미디 세상만사'의 '남편은 베짱이' 코너라고 쓴 점이다.
- 함께한 사람도 자료마다 다르다. 이 칼럼에서는 유재석·송은이·김숙 셋이다. 뉴스1 2022년 2월 27일 기사는 김용만의 이야기를 전하며 김수용·김숙·유재석이 함께 '남편은 베짱이'를 했다고 기자 말로 적었다.
3. 내 필기와 정리
10월 12일 손필기 — 유재석의 학습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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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 제목은 D-81(10-12), 각자가 성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학습방식이다. 대상은 유재석, 직업은 MC·개그맨으로 적었다.
- 백그라운드: 유재석은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네 번 다녔다. 그래도 학교 행사마다 웃기는 역을 맡았다. 그리고 고2 때 친구와 콩트로 방송에 나갔다.
- why 계기: 재미. 유재석은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을 웃기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 ⇓ what 목표: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 정량적인 목표보다는 그저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
- ⇓ how 행동:
- 고2 때 친구와 15일 동안 준비해 방송에 나갔다.
- 대학 시절, 개그 대회에 나감. → 가장 낮은 상 수여 →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개선(?).
- ⇓ what 목표2: 목표라기보다는 기대: 늘 무대 한가운데서 빛나기.
- ⇓ how 행동2:
- 혼자 빛나려고 아이디어 안 냄 → 무시당하고 바닥까지 떨어졌다. → 그때 남 탓함. ↓ 혼자만 생각했다고(돌아봄)(?)
- 추석 특집 무대에 섬 → 대사를 잊고 춤도 다 틀림 → 증명해야겠다 다짐(?).
- ⇓ what 목표3: "남편은 베짱이"라는 콩트에 다 걸었다. "나에겐 이거밖에 없다"라고 하며.
- ⇓ how 행동3:
- 리포터 대본을 100번 읽음 → 카메라 앞에서 틀려서 잘림.
- 아침부터 콩트를 짜고(?) 새벽 2~3시까지 했다. → 녹화에서 틀린 적이 없음 → 내공이 생김.
- ⇓ Conclusion 결론: 아래 4번에 옮겼다.
필기는 백그라운드 → 계기(why) → 목표(what) → 행동(how) → 목표2 → 행동2 → 목표3 → 행동3 → 결론의 흐름으로 적었다. 칸과 칸 사이는 ⇓ 화살표로 이었다. 행동 칸마다 두 줄(1·2)을 적었고, 한 줄 안에서는 행동 → 결과 → 그 뒤 생각이나 바뀐 것을 → 로 이었다. 행동2의 1번 줄은 끝의 '그때 남 탓함'에서 ↓ 화살표를 내려, 2번 줄 오른쪽에 세로줄로 나눈 작은 칸에 '혼자만 생각했다고(돌아봄)'을 적었다. 이 칸 순서(백그라운드 → 계기 → 목표 → 행동 → 다시 목표)와 행동 칸의 한 줄 모양은 오늘 대화에서 에이전트가 만들어 보여 준 필기 그림을 참고해 옮겨 적은 부분이다. 백그라운드·계기 칸의 문장은 그 필기 그림의 「필기 한 줄」(에이전트 작성)과 거의 같고, 백그라운드 끝 문장 앞에 '그리고'를 더했다. 목표2는 필기 그림의 칸 제목('목표라기보다 기대: 늘 무대 한가운데서 빛나기')을, 목표3은 「필기 한 줄」의 말을 앞뒤 순서를 바꿔 옮겼다. 행동 칸들도 필기 그림의 행동 줄을 줄여 옮긴 부분이 많다. 읽기 어려운 곳: 행동 2번 줄 끝은 '잘못되었다는끼고개선'처럼 붙어 보여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개선'으로 읽었다(?). 행동2 오른쪽 칸의 '생각했다고'는 '생각했냐고'로도 보인다(?). 행동2 2번 줄 끝 '증명해야겠다'는 '해' 뒤에 한 글자를 지우고 고쳤고, '다짐'은 '이김'으로도 보인다(?). 행동3 2번 줄의 '짜고'는 '짜서'로도 보인다(?). 결론 칸은 '상을' 뒤에 한 낱말을 지웠다. 결론의 '제일 낮은 걸을'은 쓴 글자 그대로 옮겼고, '것을'의 뜻으로 보인다(?).
4. 결론
자료와 필기의 종합 요약 (에이전트 작성): 오늘 자료는 유재석에 관한 글 네 편이다(2010년 7월 10아시아 인물 기사, 2013년 6월 중앙일보 영문판 인터뷰, 2021년 7월 JTBC 엔터뉴스 인터뷰 세 편, 2023년 3월 비즈한국 칼럼). 2013년 인터뷰에서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을 웃기는 게 좋았다고 돌아봤다. 소풍·축제 같은 학교 행사가 있으면 웃기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10아시아 기자는 그가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4번 다니며 낯을 가리는 아이가 됐다고 썼다. 고2 때는 친구 '찍새'와 15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며 콩트를 준비해 KBS 프로그램 연말 결선까지 갔다고 썼다. 그는 1991년 서울예대에 들어가자마자, 졸업하고 하라는 교수의 말과 달리 KBS 대학개그제에 나갔다. 맨 위 등수를 기대했지만 가장 낮은 상에 이름이 불렸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불만의 표시로 귀를 후비며 상을 받으러 나갔다고 했다. 데뷔 뒤에는 늘 무대 한가운데서 빛날 줄 알았지만, 무시당하고 일찍 바닥까지 떨어졌다. 아이디어를 내 보려 하지 않았고, 매일 밤 자기 전에 남 탓만 했다. 이름이 알려진 뒤 그는 그 까닭을 이렇게 짚었다. 노력을 충분히 안 했고 늘 남 탓을 했다. 그리고 자기만 생각했다(2013년 영어 인터뷰의 번역). 친구 박수홍·김용만 등이 불러 준 추석 특집 무대에서는 떨려서 대사를 잊고 춤도 틀렸다. 그 무대로 자기를 꼭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짐이 됐다고 했다. 2021년 인터뷰에서는 처음 시작할 때 큰 좌절을 겪고 그냥 학교에 다니려 했다고 말했다. 그때 박수홍·김용만 형이 찾아와 "재능이 있으니 같이 하자"고 했다. 10아시아 기자는 그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김용만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며 설득했다고 썼다. 군대를 마친 뒤 리포터 일에서는 대본을 100번 넘게 읽고 틀릴 곳에 표시해 뒀지만, 카메라 앞에서 틀려 잘렸다(2013). 2023년 비즈한국 칼럼이 옮긴 팟캐스트에서 그는 송은이·김숙과 '남편은 베짱이' 콩트를 하던 때를 돌아봤다. "나에겐 이거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아침 10시에 모여 새벽 23시에 헤어지는 날을 한 주에 45일 보냈다고 했다. 김숙은 리허설을 100번쯤 해서 녹화 때 틀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송은이는 그때 내공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2021년에 그는 "뭔가를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필요하면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9년의 힘든 시기에는 기회를 주면 불평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고 했다. 2010년 기사 맨 앞 인용에서는 성공한 프로그램보다 실패한 프로그램이 더 많았다고 했다. 새 프로그램은 지난번 문제를 알고 고치며 시작한다고 했다. 어떤 방법 덕분에 잘됐다고 본인이 따로 잰 자료는 없다.
필기와 자료가 다른 곳이 있다.
- 백그라운드의 '전학을 네 번'과 '고2 때 친구와 콩트로 방송에 나갔다'는 10아시아의 기자 글이다. 본인이 한 말은 아니다. '학교 행사마다 웃기는 역'은 10아시아에 없고, 2013년 중앙일보 영문판 인터뷰의 본인 말이다. 이 칸의 문장은 필기 그림의 「필기 한 줄」(에이전트 작성)을 옮긴 것이다.
- 행동 1번 줄의 '15일 동안 준비'는 10아시아의 기자 글이다. 15일이 첫 출연을 위한 준비인지, 연말 결선을 위한 준비인지는 기사에 없다.
- 행동 2번 줄의 '대학 시절'은 자료로는 1991년 대학에 들어가자마자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2013년 본인 말과 맞다. 하지만 그때 무엇을 고쳤는지(개선)는 오늘 자료에 없다. 그는 오히려 불만의 표시로 귀를 후비며 상을 받으러 나갔다고 했다.
- 목표2 '늘 무대 한가운데서 빛나기'는 2013년에 돌아본 말이다. 필기의 '목표라기보다는 기대'와 맞다.
- 행동2 1번 줄은 2013년 인터뷰와 맞다. '혼자만 생각했다'를 이름이 알려진 뒤 '돌아봄'으로 적은 것도 자료와 맞다. 다만 그 뒤 실제로 무엇을 바꿨는지는 오늘 자료에 없다.
- 행동2 2번 줄의 '증명해야겠다 다짐(?)'은 자료와 다르다. 2013년 인터뷰에서 그는 그 무대로 자기를 꼭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짐이 됐다고 했다. 무대 뒤에 다짐을 했다는 말은 없다. 그는 이 무대를 무대 울렁증이 시작된 때로 말했다. 이 추석 특집이 2021년 인터뷰에서 형들이 찾아와 같이 하자고 한 일과 같은 일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 행동3 1번 줄 '100번'은 기사로는 '100번 넘게'다. 리포터 일과 '남편은 베짱이' 콩트는 어느 쪽이 먼저인지 자료에 없다. 필기는 둘을 목표3 아래에 함께 적었다.
- 행동3 2번 줄은 칼럼과 맞다. 숫자는 '아침 10시에 모여 새벽 2
3시에 헤어지는 날을 한 주에 45일'이다. 모여 있던 시간이고, 내내 연습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몇 달 그렇게 했는지는 칼럼에 없다. '녹화에서 틀린 적이 없음'은 김숙의 기억이고, '내공이 생김'은 송은이의 생각이다. 유재석 본인이 이 연습의 효과를 말한 곳은 칼럼에 없다. - 결론의 '그때 원인을 찾으며'는 자료와 때가 다르다. 무명이 길었던 원인(노력을 덜 함·남 탓·나만 생각함)은 이름이 알려진 뒤 2013년에 돌아본 말이다. 그때 원인을 찾았다는 자료는 없다. '형들의 도움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는 2021년 인터뷰·10아시아와 맞다. 왜 다시 하기로 했는지는 자료에 없다. '목숨같이 하여 콩트를 해서 내공이 생기며, 지금의 대한민국 MC가 되었다'에서, 그 연습 덕분에 지금이 됐다고 본인이 이은 말은 없다. 2013년 인터뷰에서 그는 '서세원쇼'에서 떨면서 한 사소한 이야기를 관객이 좋아한 일을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삶이 바뀐 계기)이라고 했다.
내가 직접 내린 결론 (필기의 'Conclusion 결론' 칸): 친구들을 웃기는것을 좋아해서 개그 대회로 나갔는데, 상을 제일 낮은 걸을 받아 남탓으로 했다. 그때 원인을 찾으며, 형들의 도움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마지막에 목숨같이 하여 콩트를 해서 내공이 생기며, 지금의 대한민국 MC가 되었다 :)